[엄상익 관찰인생] 내가 경험한 악령들

방에 들어갔는데 엄마는 없고 왠 돼지가 한 마리 꿀꿀 거리고 있었어요

2025-12-15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한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불쑥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주위에서 오래 기도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은 영기가 느껴졌다. 이상했다.

"김민걸 판사가 찾아가 뵈라고 해서 왔습니다."

"김민걸 판사요? 모르겠는데."

"그분도 엄 변호사님을 직접 뵌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찾아가 사건을 의뢰하면 진상을 파헤쳐 법원에 얘기해 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엄 변호사님의 변론문을 감명 깊게 봤답니다."

법조계의 아웃 사이더인 나를 인정하는 판사도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종종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어떤 사건 때문에 오신 겁니까?"

"며칠 전 제 친구가 부인을 살해한 것으로 보도가 나왔습니다. 친구 부인은 인기 드라마 감독의 딸이기 때문에 매스컴을 탄 것 같습니다. 부부가 둘 다 영적인 사람입니다. 저도 목사입니다. 이 사건의 뒤에는 악령의 장난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신 같은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악령이라는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3년 전 제가 그 부부와 함께 서해안 도로를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을 때였어요. 한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친구 부부를 부부를 보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3년 안에 부부 중 한 명이 죽는다는 거죠. 친구 부인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죽긴 누가 죽어요'라고 되쏘아 주는 걸 봤어요. 남편인 친구도 '별 미친 여자가 다 있다'면서 웃었죠. 그런데 3년이 되는 일주일 전에 친구 부인이 정말 죽었어요."

서늘한 느낌이었다.

"부인이 죽기 얼마 전 친구가 저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자기 안에 악마가 있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죠. 친구가 하는 말이 가끔 정신을 잃고 자기도 모르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때가 있다고 했어요. 자기 속에 마귀가 들어와 있는 게 틀림없다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미친 소리로 치부하지 않는다. 변호사 생활 30년을 하면서 독특한 느낌을 받은 살인범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호소했다.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에게 달려드는 걸 교도관 10명이 제압했다. 

자신은 무죄라고 끊임없이 진정을 했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확신했다. 대낮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도끼 살인이었다. 증인은 그가 잔인하게 살인하는 장면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무당이었다. 그가 감옥 안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열다섯 살 때 공동묘지 옆에 있는 논에서 일을 하곤 했어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이 저물 때면 내가 있는 논 근처의 묘지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후로 운명인지 태백산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신내림을 받았죠"

귀신이 그에게 들어온 것이다.

"한번은 시골길을 가는 데 길가에 어린 계집아이가 혼자 서 있는 거예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데려다 주려고 아이 손을 잡고 걸었어요. 한참을 가다 보니까 길가에 떡 장사가 앉아 있더라구요. 그래서 인절미 하나를 사서 아이에게 줬죠. 다시 아이 손을 잡고 한 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내가 그 인절미를 맛있게 먹고 있는 거예요. 그 계집아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감지했다. 그의 속에 있는 다른 존재가 그를 도구로 해서 살인을 할 수도 있다고. 그의 영혼에는 악령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은 그의 행위를 판단했다. 

나는 그 악령의 존재에 관심을 쏟았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눈동자는 영혼의 창문이다. 그의 눈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수레바퀴 가운데의 작은 홍테에 반투명한 커튼이 가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커튼 뒤로 정체모를 그림자가 움직이며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게 숨어서 미소 짓는 악령은 아니었을까.

그런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엄마를 죽인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방에 들어갔는데 엄마는 없고 왠 돼지가 한 마리 꿀꿀 거리고 있었어요. 내 귀에서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돼지를 죽여야 한다구. 그래서 그 돼지를 죽였어요. 그런데 그 게 내 엄마였어요. 내가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게 뭔지 몰라요."

정신과 의사들은 환청을 뇌 속 뉴런 세포의 고장이라고 했다. 종교가들은 마귀가 그녀를 조종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살인범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주기적으로 고통스러운 날이 있어요. 하늘의 별이 굉음을 내면서 쏟아져 내려왔어요. 괴로웠죠. 그런 날은 무턱 대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살인을 했죠. 나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죠."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도대체 그 살인의 주도자는 누구일까. 나는 악령에 의한 살인도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의 고의와 동기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보통 때는 평범한 시민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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