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진영의 '조진웅 지키기'에 '조국 사태'가 오버랩 되는 까닭?
보호하고 싶은 건 진실로 조진웅이라는 단 한번 만난 적 없을 배우인가
[최보식의언론=박상현 기자]
'소년범' 이력이 드러난 배우 조진웅을 둘러싼 논쟁이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조진웅 옹호론자들의 “용서·갱생·관용” 주장에 원론적으로 동의하지만 중대한 사실 하나를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조진웅은 단순 배우가 아니라 “국민 특사”, “국가대표”라는 상징적 지위까지 부여받았던 사람"이라며 “'조진웅 지키기'는, 조국 사태 이후 현저하게 드러난 '내 안의 우상 지키기' 욕망의 다른 버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독립투사의 역할에 이어 국민특사로 발탁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스스로 "김구" 역할을 맡고 싶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자타공인하는 '민족의 대표' 이미지를 획득한 배우가 아닌, 보통배우였어도 지금처럼 나서서 옹호했을까"라고 질문했다.
그러면서 “보호하고 싶은 건 진실로 조진웅이라는 단 한번 만난 적 없을 배우인지, 아니면 내 안에 자리잡은 고결한 '이미지' 인지를 성찰해야 한다"며 “'배우'로서의 그의 '성공'은 정말 '갱생'의 증거인가. 연기능력을 증명하고 '개념'을 장착했으니 "새 삶"을 그는 정말 살고 있는 건가”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조진웅 사태에 대한 옹호글을 몇몇 더 읽어 봤다. 주된 논리는 이런 주장들이다.
-'갱생'이 허용되어야 한다
-과거는 묻힐 권리가 있다
-죄지은 자는 성공하면 안 되나
-폭로 자체가 사적 제재이며 우리 사회를 위협에 빠뜨린다(정주식)
-매체가 문제다
'매체가 문제'라는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서울의 소리’같은 매체의 "응징 인터뷰"를 비판하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서울의 소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에도 귀를 막고, 거짓 증언조차 기사화는 물론 SNS를 통해 무한반복 확산시켜 사람들을 선동했던 곳이다.
그리고 이번 폭로는 피해자 제보라는 얘기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매체가 문제라 해서 모든 보도를 거부한다면 목욕물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는 꼴 아닌가.
그 나머지 주장을 거칠게 정리/인용하면
"죗값을 치렀으니 용서해야 한다. 그것이 관대한 공동체로서 바람직한 방향이자 한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정도가 되겠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놓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게 있다. 문제의 조진웅이, 그런 방식으로 용서되어야 할 수많은 '일반인' 중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 어제도 쓴 것처럼 "인기"를 자산으로 하는 "배우"일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국민특사"라는 이름의 "국민대표"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 포인트는 배우에 대한 비난이나 은퇴 여부가 아니라 조진웅이라는 인물을 여전히 국민 대표의 자리에 두고 싶은지 여부에 두어져야 한다. 그런데 위 주장들은 전부 그 부분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물론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또 하나는 "갱생" 이든 "새 삶"이든 그건 변화과정이 공유되어야 가능한 얘기라는 점.
그러니까 이 '아름답고 지극히 옳은' 이야기들은 조진웅의 "문제"를 사회가 인지하고 지켜 봤을 때 가능한 담론이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면 무려 "국민 특사"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우리는 모두 함께 박수를 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진웅 본인조차 은퇴에 대해 "저의 지난 과오에 대해 제가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자 도리"라면서 "앞으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과오"에 "갱생과정이 공유되지 않았음"에 대한 잘못 인정도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빛의 속도로 은퇴 선언을 한 이유일 것이다. 이번 '폭로'가 "사적 제재" 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는 투명함이 요구되는 위치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반복하자면 대중 앞에 서는 '배우'라는 직업은 '사랑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의 대상이 되는 직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 간에 특별한 관계가 되고자 했을 때 진실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배우'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그에겐 묻어둔 부분에 대한 여러 번의 '고백' 기회가 있었을 터.
물론 고백이란 대중에 대한 과거사 고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대화도 피해자와의 대화도 혹은 그걸 대체하는 또다른 행동도 그런 고백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배우 이외의 삶에서 드러난 건 폭행이나 음주, 탈세 같은 것들이다.
'배우'로서의 그의 '성공'은 정말 '갱생'의 증거인가. 연기능력을 증명하고 '개념'을 장착했으니 "새 삶"을 그는 정말 살고 있는 건가.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그의 현재는 잊혀진 기억과는 추호도 함께 할 수 없는 정도인가요?"(박범계)라는 주장은 조진웅 사태를 옹호하는 이들의 심리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내 안에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버리고 싶지 않은 것. 다시 말해 어제도 썼던 '나의 환상'을 지키고 싶다는 이야기.
'조진웅 지키기' 사태는, 조국 사태 이후 현저하게 드러난 "내 안의 우상 지키기" 욕망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그리고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미지 지키기와 너무나 닮아 있으면서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피해자 아닌 가해자가 되어 있는, 치명적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나는 사실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얼굴은 알았지만 이름은 처음 인식했다).
따라서 호오감정이 따로 없지만 호감이 있었다면 옹호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라는 건 당연히 이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치명적 모순이 우리사회를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는 자각이 이제라도 필요한 거 아닌가.
그래서 옹호자들께 묻고 싶다.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독립투사의 역할에 이어 국민특사로 발탁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스스로 "김구" 역할을 맡고 싶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자타공인하는 "민족의 대표"이미지를 획득한 배우 아닌 보통배우였어도 지금처럼 나서서 옹호했을지 여부를.
보호하고 싶은 건 진실로 조진웅이라는 단 한번 만난 적 없을 배우인지, 아니면 내 안에 자리잡은 고결한 '이미지' 인지를.
여러분들은 자신 안의 우상을 깨뜨리면 그만 무너지고 말 그저 약한 자아의 주인공인지를.
애초에 우상을 갖지 않았거나, 우상에게 먹히기 전에 깨뜨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의 판단을 "차가운 정의"라 비난하기 전에, 죄를 지어도 갱생하고 새로 태어나면 된다는 사뭇 따뜻한 포즈를 취하기 전에, 소년원 아이들의 실망을 미리 상상하며 가슴 아파하기 전에, 죄를 지어도 얼마든지 새 삶을 살 수 있지만, 남을 상처 입히면 자신의 인생도 언제든 망가질 수 있으니, 남을 상처 입히지도 폭력 행사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선도'가 먼저 아닌가. 그게 이미 죄 지은 소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대다수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SNS에서 '먼저' 쓰여지고 주어져야 할 말 아닌가.
심지어 그 따뜻한 용서의 대열에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라는 말의 주인공까지 끼어 있다면,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올 건 '선택적 용서'임을 알고 '갱생' 대상들조차 실망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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