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를 “부흥강사로 키우겠다”던 회장님 ... 기도원에서 종교 장사꾼을 만났다

[엄상익 관찰인생] 양복도 한 벌 해 주라고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몰라

2025-12-06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서울 근교의 기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조진도가 나를 보더니 뛸 듯이 반가와 했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조진도에게 기도원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세상의 유혹이 강했다. 거리를 두는 게 필요했다. 내가 법률고문으로 있는 노숙자 합숙소의 목사가 소개한 기도원이었다. 그 기도원을 경영하는 대형 교회 목사가 후원금을 준 적이 있다고 했다.

조진도와 함께 기도원의 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어둠을 가르며 기도원으로 들어오는 그랜저의 불빛이 번쩍였다. 그 위의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뛰어 내려왔다.

"회장님이 오십니다."

직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기도원을 소유한 대형교회의 목사를 회장님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차가 멎고 뒷좌석 문이 열렸다. 50대 중반쯤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배가 튀어나오고 턱살이 늘어졌다. 같이 차에서 내린 남자가 비서처럼 그를 수행했다. 직원이 부목사라고 내게 알려줬다. 내가 회장이라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엄 변호삽니다. 조진도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래요? 조진도가 잘 생활하고 있어요. 내 생각으로는 훈련 좀 시키면 앞으로 좋은 부흥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멈칫했다. 조진도를 그 교회 조직에 맡긴 건 아니었다. 회장 목사는 비만한 몸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찬지 씩씩거렸다.

잠시 후 우리는 기도원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회장 목사가 소파의 상석에 앉았다. 주위에 몇 명의 전도사들이 신하같이 황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회장 목사가 내게 권하는 소파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입을 열었다.

"내가 조진도를 키워주려고 지금 생각 중이요. 양복도 한 벌 해 주라고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몰라."

그가 옆에 서 있는 부목사를 쳐다 보았다. 그가 착각하는 것 같았다. 조진도는 그냥 기도하러 왔다. 그러나 회장 목사는 조진도를 종교 상품으로 보고 사업에 끌어들이려는 말투였다.

"내가 움직이는 교회 돈이 몇 백 억이 되는데 말이지. 엄 변호사가 잘하면 우리 교회 사건을 맡을 수도 있을 거요."

순간 거부감이 치밀었다. 기도원이 아니라 사업체였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똥을 밟은 느낌이라고 할까. 조진도를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그 돈 하나님 돈이지, 목사 개인 돈입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튀어 나갔다. 순간 회장 목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아차 했다. 참고 넘어갈 걸 도대체 왜 그랬을까.

사무실에서 나와 조진도가 묵는 방으로 갔다. 패널로 만든 창고 같은 건물에 바라크로 칸을 막은 조악한 방이었다. 회장 목사가 만진다는 몇 백 억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구석의 작은 상 위에 성경 한 권만이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 집으로 갑시다."

내가 조진도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죠. 와보니까 여기 목사 순 엉터리 장사꾼 같아요. 양복 한 벌 해주고 날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부흥회 하는 걸 옆에서 구경하니까 장사를 하는 것 같아요."

나는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그가 묵을 곳이 없다면 우리 집에 같이 있겠다고 했다. 그게 진심이었을까. 그냥 한 말일까. 그 순간은 진실이었다. 이제 실 행단계에 온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도둑이 됐어도 비겁하거나 비열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 들어가도 사람을 해치거나 폭력을 쓴 적이 없었다. 여성을 건드린 적도 없었다. 30년의 범죄 기록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믿기로 했다.

성남의 야탑동에 있는 다가구 주택이 나의 집이었다. 조진도에게 아들 옆방을 내주었다. 아내는 나를 밀어주었다. 아들에게 앞으로 조진도를 삼촌이라고 부르고 가족같이 지낸다고 했다.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 그것이 전과자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이다.

조진도는 그 믿음에 부흥하려고 노력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물걸레로 집안을 곳곳이 깨끗이 닦고 조깅을 나갔다. 돌아온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 야탑동에서 한 30분 뛰니까 분당 중심가가 나와요,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면서 많이 구경 했어요."

"구경하다가 담을 뛰어넘은 건 아니죠?"

내가 농담했다.

"에이, 무슨 말씀을..."

그가 웃었다. 조진도는 늦잠을 자는 아들에게 남자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정한 삼촌이 되어 주었다. 아내의 무거운 옷장도 번쩍 들어서 옮겨줬다. 아내가 미안해하면 "부잣집 철 금고도 들고 갔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예요"라고 하면서 씩 웃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아내가 만들어 식탁에 올려 놓았다. 때마침 조진도의 어릴 적 친구인 문철기가 찾아왔다. 상에 올려진 국수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우리는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았다. 조진도가 신나서 말했다.

"전 비빔국수를 정말 좋아했어요. 몇 그릇도 먹어요."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따라서 웃었다. 조진도가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야 너도 예수 한번 믿어봐."

"예수 믿는 놈들이 더 나쁘더라."

문철기가 장난기 섞어 되받았다.

"그래도 날 봐서 한번 믿어봐라"

"알았다. 친구 말 듣고 한번 믿어보지 뭐."

"자 손을 모으고 나 하는 대로 따라해 봐."

조진도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문철기도 두 손을 모았다.

"이제부터 눈감고 내가 하는 말을 복창해."

"알았어."

문철기가 눈을 감았다.

"하나님 이 음식을 먹고 마시게 해 주셔서"

조진도가 거기까지 하고 말을 끊었다.

"하나님 이 음식을 먹고 마시게 해 주셔서"

문철기가 따라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간단하니까 앞으로 외워 둬라."

눈을 뜨고 조진도가 문철기에게 말했다.

"알았다."

우리들은 비빔국수를 후룩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 순간 우리는 한 가족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거지로 또 도둑으로 30년을 감옥에서 살아온 그는 예의가 없었다. 새벽에 내복차림으로 우리 부부가 자는 방에 불쑥 들어와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소파 여기저기에 옷을 던져 놓기도 했다.

한번은 밖에 나갔다 돌아온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옛날 나를 기소했던 정홍원 검사장이 불러 그 방에 갔더니 쓰라고 100만 원 짜리 수표를 줍디다. 나오다가 불쌍한 여자가 있어서 그 수표를 줬어요."

그에게 돈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복잡한 분당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퇴근하곤 했다. 조진도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내게 받은 돈을 썼다. 한번은 그가 내게 물었다.

"왜 택시를 타지 않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오죠?"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러는 겁니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는 돈에 대한 관념이 달랐다. 땀 흘려 일해서 버는 게 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집에서 묵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루 수백 통의 전화가 왔다. 신문이나 방송사에서 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배라고 사칭하면서 전화를 하는 조폭들도 있었다. 

조진도과 결혼하겠다는 장애인도 있었다.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기자들이 수시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십 분쯤 지나가면 슬며시 반말로 변했다. 기자들을 거지 왕초 시절 똘마니 다루듯 했다. 조진도를 인터뷰한 기자한테서 항의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조진도 교육 좀 철저히 시키세요, 사진기자가 포즈를 취하라고 하니까 변호사 사모님을 옆에 오게 하더니 '우리 여편네 같이 찍어 주슈' 하더라구요. 그래도 변호사님은 은인인데 그런 식으로 조진도가 행동하면 안 되죠. 단단히 버릇 좀 가르치세요."

그는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에게 바른말을 해 줄 건 나뿐이었다.

"이제 먹물들의 세계로 건너왔으면 거기에 맞는 예의부터 배워야 합니다."

"무슨 예의요?"

조진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사니까 집이라도 옷을 벗고 다니지 마세요. 그리고 벗은 옷은 자기 방에 차곡차곡 정리해야 되요, 소파 여기저기에 옷을 벗어서 팽개치면 안 되요."

"알았어요."

그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여성이나 노인이 있으면 먼저 타게 양보해야 합니다. 그게 예의고 배려입니다."

"그래야 돼요? 하여튼 알았어요."

"기자들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나이가 젊어도 그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알았어요."

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눈에 언짢은 빛이 비쳤다. 내 말이 그에게 잔소리로 들리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변호사지 그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를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그와의 사이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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