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의 실버벨] 전원생활 '로망'을 결행한 은퇴자들의 그 뒤?
노후 ‘어디서 살까’보다 ‘무얼 하며 보낼까’를 고민하라
[최보식의언론=박정원 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나이 들어서 어디서 살까’ 고민하는 중‧장년들이 많다. 젊어서 로망같이 간직하던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또한 많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로 떠나온 결과, 즉 인간의 귀소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결행한 사람들은 거의 돌아온다. 지금 서울 인근 양평에 단독주택 매물이 쏟아져 나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2박 3일, 아니 길어야 일주일이면 끝난다. 물론 예외적으로 일부 극소수는 이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나이 들어서 어디서 살까’에 대한 고민에 앞서 ‘노후를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이는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외로움을 타고 고독해진다.
은퇴하고 나면,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흔히들 노후 생활을 잘 보내려면 돈, 건강,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친구 만나는 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항상 만나줄 친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자주 만나면 서로 불편하고 귀찮아질 수 있다. 이 많은 시간을 다스리는 방법을 본인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무엇인가 소일거리를 찾아서 하는 노인들이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는 심심찮게 발표되고 있다. 세계의 장수촌 ‘블루존(Blue zone)’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움직인다. 텃밭 가꾸고, 청소하고, 운동하고, 커뮤니티 활동하는 등등…. 물론 이들의 식단도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노후 생활을 잘 보내려면 ‘혼자 잘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음악 감상, 그림 그리기, 공원이나 동네 산책, 조조 영화보기, 대형 서점 둘러보기, 박물관 순례 등은 오히려 혼자 하기 자연스럽다. 하지만 본인이 게을러서이든지, 아직 찾지 못해서인지 등의 이유로 여전히 노후 할 일을 못 찾아 방황하는 중‧장년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을 가만 살펴보면 이 모든 여건을 갖춘 곳이 있다. 바로 도심 실버타운이다. 자연과 더불어 시골 실버타운에 입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불만족스러워한다. 심하게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도 최대 일주일이면 끝난다. 그 이상 있으면 심심하고 지겹고 할 일 없고, 불편하고 다른 데 가고 싶어진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수 세기 동안 도시에 익숙해졌다. 도시는 단순히 농촌의 반대 개념이 아닌 모든 편의시설을 갖춘 장소를 의미한다. 특히 나이 들어 병원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 대형 병원엔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도시에 살고 싶지만 여러 사정상 시골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시골에 있는 실버타운은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장점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게 없다. 현재 대한민국 시골의 현주소가 ‘노인들의 거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집이다. 빈집 아니면 노인만 산다.
노인들만 사는 동네에 다시 노인들만 모아 숙식을 제공하는 시골 실버타운에선 기본적으로 활력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만 모아 놓아 도대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어떻게 보면 본인의 선택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데 불만을 표한다.
현재 인간은 도시에 적응돼 있다. 하버드대학 도시경제학 대가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에서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도시가 어떻게 인간들을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게, 더 친환경적으로,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다양한 통계를 바탕으로 도시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준다.
필자가 본 이 책의 핵심은 화상회의나 이메일 등 비대면보다는 만나서 대면 회의를 한 그룹이 훨씬 잘 협력하고 돈도 더 잘 벌었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 스탠포드대학과 그 인근에 애플, 구글, 야후, 이베이 등이 모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이 무수한 도시의 장점을 무시하고, ‘자연과 더불어’라는 로망이나 귀소본능에 호소한 시골 실버타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성공할 수 없다. 여기에서 인구 소멸지역 89곳에 실버타운을 허용한다는 정책의 문제는 논외로 하겠다. 왜냐하면 인구 지방분산이나 국토 균형발전, 혹은 지방 살리기라는 명분에서 결정한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만 현실을 전혀 무시하거나 모르고 결정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심 실버타운은 훨씬 생동감이 있다. 사람 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갖춘 편의시설에서 기본적으로 뭔가를 하고 싶게 하거나, 할 일이 많다.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 마디로 심심하지 않게 한다.
필자가 있는 실버타운만 하더라도 하루에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서예교실, 요가, 음악 감상, 기타 레슨, 스마트폰 교실, 드럼 교실, 라인 댄스, 시그넘 스트레칭, 두뇌 튼튼 등 하루 종일 움직여도 다 소화 못 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전문 트레이너가 상주하는 피트니스센터, 목욕탕이 있는 사우나, 노래방 등 즐길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2024년 입주한 이 모(84) 씨는 너무 만족해하고 있다. 그녀는 77세에 등단한 늦깎이 여류 시인이기도 하다.
“혼자 지내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했고, 큰아들과 같이 생활했지만 서로 생활패턴이 달라 불편했다. 실버타운에 입주하니 직원들이 항상 친절하게 챙겨주고 대처해주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식사 준비나 청소에서 해방되어 충분히 내 시간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노후에 함께할 가족 같은 입주민들이 생겨 이또한 너무 좋다. 실버타운 내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것이 무성보다 가장 큰 수확이다.”
그녀는 1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사업체를 이어받은 자식들이 경제적 부담을 할 수 있어 도시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었다. 어떤 측면에서 그녀는 초고령사회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을 갖춘 노인들의 본보기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더시그넘하우스에 입주한 노인들의 평균 연령은 84.4세. 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연말 실시하는 만족도 조사에서 평균 90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한다. 반면 자연과 더불어 한가한 시골 실버타운에 입주한 노인들은 탈출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내재된 많은 문제점들은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해결할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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