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의 실버벨] ‘할머니 가설’ 아시나요?

다른 포유류와 달리 왜 인간은 폐경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까

2025-03-14     박정원

[최보식의언론=박정원 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전원일기

전통적인 가족 체계에서는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 제도가 일반적이었으나 산업화‧도시화 이후 사회는 핵가족, 1인 가구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는 1인 가구의 비율이 40%를 넘어섰다는 통계청 발표도 있었다. 

대가족 제도는 세대 간의 유대감이나 가치의 전승,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훨씬 장점이 많지만, 만혼과 비혼의 증가‧인구의 고령화‧경제적 독립 등의 이유로 핵가족이나 1인 가구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대적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족 체계가 지닌 장점을 현대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현대 사회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 고령화는 장기적으로 생산 인력 부족과 복지 부담 증가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가설(The Grandmother Hypothesis or The Grandmother Effect or The Grandmother Theory)’이란 이론이 있다. 노화 및 노년학과 관련한 생물학적 진화를 연구하는 발달심리학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제임스 헌든(James G. Herndon)이 주장했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폐경과 관련 있다. 다른 포유류는 생식 기간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도 다하는 데, ‘왜 인간은 생식 가능 시기가 끝난 폐경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까’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진화론적으로 이렇게 적응했다 외에는 다른 증거를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가임 시기를 30년으로 잡으면, 이 이후 현재 여성의 기대수명 86세로 추산하면 가임 시기 이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할머니 이론’의 매우 주요한 결론은 여성이 출산 가능 연령 이후에 더 오래 살수록 손주의 수가 더 많고, 그 손주도 장수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할머니가 오래 살수록 손주의 수도 많고, 손주도 장수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실제로 핀란드 여성 500명과 캐나다 여성 2,300명으로 구성된 데이터를 ‘수명과 생식’에 관한 내용으로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핀란드 데이터는 어머니 근처에 사는 일찍 생식을 시작한 젊은 여성이, 할머니가 사망했거나 다른 마을에 거주하는 여성의 딸보다 평생 생식 성공률이 더 높았음을 보여주었다. 지리적 근접성도 매우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연구에서 이종부모의 효과를 조사한 결과, 외할머니의 존재는 13개 사회 중 9개 사회에서 아동 생존율을 향상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할머니는 딸의 출산 간격을 줄임으로써 딸의 생식력을 높이고, 나아가 자신의 포괄적 적합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할머니의 양육 참여는 손주의 학업 성취도 향상, 사회성 증가, 신체 건강 등 다양한 지표에서 긍정적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매우 많다. 

할머니가 딸의 생식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딸의 생식력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딸이 생식을 잘할 수 있도록 할머니가 딸의 자식, 즉 손주를 잘 돌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할머니는 딸의 아이들과 유전자를 공유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그 이유는 모성이 부성보다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딸의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친척이 아닌 사람에게 낭비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조상의 암컷이 생식력이 감소함에 따라 암컷의 힘을 유지하여 딸이 자녀를 돌보는 것을 도울 수 있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할머니도 손주를 부양하며 자신의 체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교 대상이 된 핀란드와 캐나다에서 할머니의 장수는 후손 수의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폐경 후의 장수가 실제 손주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손주도 나중에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와는 상관없지만 손주의 학업성 취도와 인지 발달, 사회성 증가 등은 다른 연구에서 밝혀진 부분이다. 

따라서 할머니의 장수는 사회와 가족 구성원의 필요와 이익에 의해 진화론적으로 발달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실제로 손주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로 매우 미미했다. ‘여성이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에 대한 일부 답이 진화론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 같이 조부모, 특히 조모가 가진 장점이나 사회적 기능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 배려나 시행도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3대가 함께 살 수 있는 현대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장수, #노년, #대가족, #핵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