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좋은 문장을 베껴 적는 습관
속칭 일진 비슷하게 노는 아이였다. 시험이 닥쳐 와도 그냥 놀았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중학교 때였다. 옆에 앉은 한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이 특이했다. 자그마한 수첩을 한 권 가지고 와서 선생님이 하는 말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뭘 쓰나 슬쩍 건네보았다. 선생님이 하는 우스개 소리까지 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속칭 일진 비슷하게 노는 아이였다. 시험이 닥쳐 와도 그냥 놀았다. 그런데도 성적이 좋았다. 그의 메모 습관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변호사가 되어 그 아이를 떠올렸다. 수첩을 앞에 놓고 의뢰인의 말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말뿐만 아니라 얼굴 모습, 말할 때의 주변 분위기까지 기록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사람들의 입이 되고 글이 되어야 했다.
오랫동안 법관 생활을 한 판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폭들의 싸움을 보면 무시무시하지. 그런데 재판에서 공소장을 보면 별 게 아닌 것 같아. 사법경찰관이나 검사가 그런 생생한 장면을 글로 묘사해서 전달하지 못하는 거야. 범죄의 잔혹성을 죽은 문장으로 표현하니까 현장감이 없는 거야. 똑같은 사건을 실제로 보거나 영화로 봤다면 무겁게 처벌했을 거야. 국민과 판사 사이에 사실 인정이 차이가 나는 이유야. 판결문도 그래. 논리만 있지 미흡해. 그걸 벗어나려면 읽는 사람이 설득이 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지식과 멋이 가미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쓸 수 있는 판사가 별로 없어."
나는 변론문을 작품같이 만들어 보려고 했다. 좋은 변론문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내용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살아 있는 현실을 배우고 싶었다. 사람들과 만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그들이 얘기하는 걸 받아 써 봤다.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단 5분을 들어도 수첩 여러 장이 꽉 찼다. 빈 깡통인 사람은 몇 시간의 수다를 들어도 단 한 줄도 쓸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채집한 말들이 쌓였다. 소가 되새김을 하듯이 얼마가 지나 나의 메모들을 다시 봤다. 나의 관념이나 생각은 별 쓸모가 없었다. 상대방이 배설하듯 뱉어놓은 것들 대부분이 쓰레기이기도 했다. 허풍도 많고 과장도 있었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 세상을 비판하는 말 중에 쓸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어쩌다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게 있었다. 다른 사람이 무심히 던진 짧은 한마디가 인생을 관통했다. 와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보석같은 한 마디를 구하는 것은 바위 몇 개를 갈아 금을 1~2그램 얻는 것 같은 수고라고 할까. 나는 좀 더 귀한 말이 많은 곳이 어디인지를 살폈다.
고전이었다. 토스토엡스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의 말을 따로 적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수용소에서 성경만 가지고 다니면서 몇 년을 읽었다고 했다. 그걸 소설의 주인공 입을 통해 자기 식으로 사람들에게 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레빈의 말을 베껴서 적기도 했다. 그는 예수를 레빈으로 바꾸어 진리를 풀어 알리고 있었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시집들을 읽고 그 속에서 청보석 홍보석 같은 말을 낚아 어망 대신 수첩에 담아 넣었다. 경전 속에 진수가 들어있었다. 나는 성경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말 중 내 가슴을 울리는 말을 수첩에 베꼈다. 그런 행위는 나를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불경에서도 말을 구했다. 사람마다 취미나 즐거움이 다양하다. 내 경우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베껴 적거나 읽는 순간이 즐겁다.
베껴 적은 나의 수첩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소가 되새김을 하듯이 읽고 또 읽는다. 그 하나하나를 녹여 피속에 스며들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행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지난 30년간 수집한 재료들 더미 위에 앉아 있으면 쓰레기 산 위에 있는 것 같다. 선하고 좋았던 말들은 정말 드물다. 세상은 악의에 찬 말들이 오염된 먼지처럼 꽉 차 있는 것 같다.
나는 매일 나의 말 창고에 있는 것들을 체로 걸러 글빵을 만들 재료를 고르고 있다. 설익거나 날 것이 섞여 있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인다. 내 기술과 능력이 부족해서 그냥 담백한 글 빵을 만들 뿐이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분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걸 잘 안다. 그래도 글빵 만드는 걸 노년의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 속 마르다(마르타) 같이 세상 분주하게 살고 싶지 않다. 마리아같이 필요한 한 가지만 하고 싶다. 쓸데없이 분주해서 필요한 일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그래도 신기하게 단골 손님들이 생겼다. 글빵을 통해서 그들의 영혼과 만나는 것 같다. 그러면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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