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단종 시신' 묻어준 영월의 착한 사마리아인
단종의 시신이 영월의 강가에 버려져 까마귀밥이 되고 있었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였다. 나이 구십이 넘은 은사가 마이크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구석에서 우리들 몇 명이 모여 있으면 "이놈들 담배 폈지?" 하고 다가와 미소를 지으면서 살피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어조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정교복에 까까머리 소년이었던 우리들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담배를 피워보기도 했었다.
그 은사가 나이 칠십에 가까운 제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는 출세도 하고 돈도 벌어야 했지만 오래 살다 보니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결국 인간이란 조상으로부터 받은 DNA를 후손에게 전하는 연결고리에 불과한 거야."
나는 그 말을 무심히 흘려들었었다. 이따금씩 종친회에서 보내는 우편물이 나의 아파트로 오곤 했다. 책자와 함께 흰 봉투에 담긴 서신이 오는데 봉투의 표면에는 로고같이 '爲善被禍, 吾所甘心(위선피화, 오소감심)'이란 한자가 박혀 있었다. '좋은 일을 하고도 화를 당한다면 달게 받겠다'는 영월 엄씨의 가훈이었다.
단종의 시신이 영월의 강가에 버려져 까마귀밥이 되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 시신에 손을 대면 3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걸 본 평민 엄흥도가 죽은 임금을 묻어 주었다. 그리고 도망을 하면서 쓴 글이었다. 그게 대대로 집안의 가훈이 된 것이다. 나는 그 가훈(家訓)에서 성경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요즈음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유대 민족의 뿌리가 아브라함이듯이 핏줄의 맨 위에 누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의 먼 조상은 중국에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엄씨세가 문헌지'라는 책자가 있다. 그 안에 '엄자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장안에서 후한을 세운 유수라는 인물과 같이 자랐다. 공부도 같이 했다.
둘 다 신분이 지방의 호족 정도였다. 친구였던 유수가 후한의 황제가 된 것이다. 엄자능은 친구가 황제가 됐는데도 찾아가지 않았다. 움막 같은 집에서 낡은 양가죽 옷을 입고 살던 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따금씩 강가에 나가 낚시를 드리웠다. 그리고는 저녁이 되면 자기의 집으로 돌아와 밤에는 책을 읽었다. 은자 같은 삶이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의 움막으로 찾아왔다. 엄자능 그에게 황제는 그저 어린 날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옛친구일 뿐이었다. 황제도 그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는 황제에게 자기 방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둘은 예전같이 흙벽 아래 있는 나무 침대에서 같이 잤다. 엄자능은 옛버릇대로 잠이 깊이 들자 황제가 된 광무제의 배 위에 한발을 걸치고 잤다.
다음날 아침 황제는 옛친구와 오랫 만에 같이 자고 일어나니 좋다고 했다. 엄자능은 친구인 황제가 주려는 벼슬을 사양했다. 책 읽는 농사꾼에게 벼슬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그렇게 살다가 80세 무렵 죽었다.
봉건시대의 가치관은 얼마나 왕과 가깝고 어떤 신분계급이고 어떤 벼슬을 했느냐이다. 인간의 값이 신분과 벼슬에 의해 정해졌다. 기록 속의 '엄자능'이라는 인물은 어떤 존재였을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의 길을 가다가 시간 저쪽으로 떠나버린 신선은 아니었을까.
그 후손인 엄임의(嚴林義)라는 인물이 당 현종이 새로 만든 음악을 가지고 한반도로 건너왔다. 그는 오지인 영월에 눌러 살고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우리나라 엄씨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지금도 관직이라는 달콤한 꿀 한 방울에 수많은 파리 같은 존재들이 몰려든다. 친한 친구가 대통령이 됐을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까. 대통령이 자세를 낮추어 옛날같이 친구와 한방에서 스스럼 없이 잘 수 있을까. 권력자나 재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비굴해지는 것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통령에게서는 어떤 자리를 얻고 싶고 재벌에게서는 돈을 얻고 싶으니까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게 존재의 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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