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가 깐죽대는 바람에 윤 대통령이 '꼭지' 돌아 계엄?
[오진영 유쾌통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최보식의언론=오진영 작가]
JTBC에서 보도한 국힘당 비공개 의총 녹취를 들어봤다.
경상도 억양을 쓰는 여성 국회의원이 '(이게 다) 누구 때문이냐'면서 한동훈에게 '이 자리에서 당장 대표 그만두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비롯해서,계엄 해제 표결할 때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던 국힘 의원들이 탄핵 가결되고 나자 기세등등 나타나서,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회 가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고도 국회로 달려가 계엄을 막았던 당 대표에게 '이 사태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몰아세우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해봤다.
계엄을 막아야 하는 국회의 의무에 충실했어야 할 시간에는 꽁무니 빼고 숨어있던 저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탄핵과 혼란의 책임이 정말 한동훈에게 있을까.
녹취에는 의원들 중 누군가 한동훈을 가리켜 "또라이 아냐? 또라이!" 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고, 또 누군가 "저런 놈을 갖다가 법무부 장관 시킨 윤석열은 제 눈 지가 찌른 거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니 책임지고 대표 사퇴하라는 국힘당 의원들의 논리 구조는 대체 무엇일까.
계엄을 선포한 게 한동훈이 아니고 윤석열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테니, 아마도 그들의 말뜻은, '니가 당 대표가 돼서 윤석열에게 깐죽대는 바람에 윤석열이 꼭지가 돌아서 계엄까지 했잖아' 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여름 전당 대회 때였다. 나는 김건희 명품백과 특검 거부로 인해 '상식과 공정'이라는 상징 자산을 윤석열이 잃어버렸으니, 이제부터 국힘이 합리적 보수층의 지지를 얻으려면 그런 대통령과 각을 세워 제어하는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한동훈만은 안 된다는 주장 중에 한동훈은 배신자이고 좌빨이라 안 된다는 소리는 무지의 소치라 치더라도, 이건 좀 말이 되는데 싶었던 게 있었으니, '대통령과 당대표가 불화하면 필패로 망한다'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으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전당대회에서 63%의 표를 얻어 한동훈이 대표가 되었을 때까지는 내가 옳았던 것 같았는데, 윤석열의 '계엄 자폭'이 쓸고 지나간 폐허에서 '이게 다 대표 때문'이라고 빽빽거리며 남은 당권이라는 빵조각을 서로 뜯어먹겠다고 흥분한 이들을 보니 내가 확실히 틀렸다.
윤석열이 한동훈의 말을 듣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거라고 기대했으니 윤석열을 과대평가해서 틀렸고, 한동훈이 국힘의 지지세력을 모아 윤석열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으니 한동훈을 과대평가해서 틀렸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비겁한 쥐새끼 수준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니 국힘당을 과대평가해서 틀렸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한동훈배신자, #계엄자폭, #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