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 둘러싼 '충성과 배신' 분열의 본질?
홍준표가 입만 열면 ‘한동훈은 배신자’라고 게거품을 무는 것
[최보식의언론=오진영 작가]
아래는 본지의 입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게재합니다.(편집자)
전근대 조선 사회의 특징은 사람들이 지배와 종속의 위계 서열 관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왕 밑에 신하 벼슬아치들이 있고 그 밑에 백성 있고, 노비 있었다. 이 위계 종속 서열 관계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으면 조선 땅을 떠나야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대등한 계약 관계로 맺어진다. 회사가 직원을 고용했다고 해서 회사가 주인이 아니고 양자 중 어느 한 쪽이 계약을 어기면 관계는 끊어진다. 비즈니스를 비롯해서 모든 사회 영역 안 관계의 속성이 그러하다.
그런데 아직도 '참여자들이 대등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종속 관계로 맺어져여야 한다'고 믿는 주장이 유독 크게 들리는 영역이 있으니, 바로 정치라는 영역이다.
누군가 나한테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일을 시킨 다음 돈을 안 줬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 약속을 어긴 상대를 비난할 수 있고 고발할 수 있고 불이익을 줄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한다.
이때 나에게, "돈 못 줄 사정이 있었겠지. 그렇다고 너한테 한때 일감을 줬던 사람한테 그렇게 박절하게 군다구? 그건 배신이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없다. 제 정신인 사람이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 영역에 들어서면 참 희한하게도 스토리가 달라진다. 정치인이 '자유와 민주주의와 법치를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그에게 표를 줬던 유권자가 있다.
표를 얻어 권력을 가진 그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자유와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협하는 행동을 했다. 그래서 그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권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겠다고 말하면 이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린다.
"오죽하면 그랬겠어? 사정이 있었겠지. 한때 믿고 투표했던 정치인이니 나는 계속 지지할 거야. 사람이 신뢰를 지켜야지"라고.
장동혁 국힘당 최고위원이, "지금 탄핵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이고 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정치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김건희 여사 특검이 통과될 경우 최고위원직을 즉시 사퇴하겠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정치는 그 이상' 이라는 말은 정치에서는 전근대적인 지배 종속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장동혁에게 정치는 국민에게 약속을 해서 신뢰와 표를 얻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파면되어야 하는 계약 관계가 아니다. 주군을 향한 충성이고 위기에 처한 주군을 버리면 배신이다.
홍준표가 입만 열면 ‘한동훈은 배신자’라고 게거품을 무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준표는 "자기를 키워준 양아버지 같은 시저를 암살한 브르투스 같은 패륜이 한동훈"이라고 말했다. 홍준표의 정신 세계는 전근대 조선사회와 로마 시대에 머물러 있기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배신'이라는 단어를 밥먹 듯 쓰는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 정치는 전근대적 종속 관계이지 근대적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에게 있어 보수 정당이란 우두머리에게 복종하고 그 대신에 권력을 나눠 받는 관계 안에 들어온 자들의 결속일 뿐이다.
12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는 대통령을 지키고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지지자들의 결속을 촉구하려는 목적이었다.
문제는 이 나라의 보수 정당 지지자들 중에는 대통령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계약을 어겼으니 파면해야 한다고 믿는 근대 시민들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대통령인데 지켜줘야지 차마 못 버리겠다는 전근대 백성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부터 한참 동안 보수 세력 안에서는 분열과 반목이 치열할 것이다.
그 분열의 본질은, 대통령이 우리의 군주이니 군주를 배신하면 안 된다는 전근대 정서와 대통령은 우리가 고용한 계약 관계를 깨트렸으니 파면해야 한다는 근대 정신의 충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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