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사라졌던 말라리아, 어떻게 재유행하게 되었나?

[채종일 기생충썰] 단일 질환(감염병)으로는 단연코 사망 원인 1위인 말라리아

2024-11-15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의대 명예교수)]

말라리아가 유병하는 지역의 군부대에서 근무했던 병사가 제대한 후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대병원 유튜브 캡처

단일 질환(감염병)으로는 단연코 사망 원인 1위인 말라리아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단일 질환(감염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었다. 1984년에 마지막 환자 2명이 발생한 후에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라리아 발생국가’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여름엔 전국에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었다. 8월 말 경기도 파주시에서 채집한 말라리아 매개모기에서 삼일열말라리아 원충이 확인되었고, 매개 모기 일평균 개체수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수많은 연구보고와 세미나를 통해 이번 말라리아 재유행은 북한의 말라리아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북한 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를 물어 감염된 모기(중국얼룩날개모기)가 휴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 환자를 발생시켰던 것이 명확하다. 

그러나 차츰 남한에서 환자를 물어 감염된 모기가 남한에서 환자를 발생시키는 이른바 지역 전파(local transmission)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모기의 행동반경은 주로 1-2 km 이내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폭이 4-5 km인 휴전선을 그리 쉽게 넘어오지는 못하는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다만, 순한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주고 습기 많은 하천이 있는 경우 하천을 따라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따라서 경기도 서쪽 지역(임진강 및 한강 하류)은 북측 감염 모기가 넘어올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남북 상황이 원활하다면 남북 공동 모기 방재사업을 전개하거나 말라리아 환자 진단 및 치료에 도움을 주는 상호 협력이 시급한 퇴치전략의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말라리아 재유행이라는 적신호에 불이 켜진 것은 1993년이다. 

1993년 여름 필자에게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국군수도병원인데 열이 펄펄(40도 넘게) 나는 병사 1명이 휴전선 부근에서 후송되었는데 혹시 말라리아가 아닌지 진단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혈액도말 표본을 받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니 아니나 다를까? 삼일열 말라리아였다. 지난 10년 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말라리아가 국내 환자에서 다시 발견되다니.... 가슴 두근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휴전선 남쪽 인근 부대에서 비슷한 환자 2명이 또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다시 혈액도말을 만들어 현미경으로 검사해보니 역시 삼일열 말라리아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환자가 발생하였고 며칠 후 또 다른 환자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1994년에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모두 23명이었고, 환자는 국군장병 20명, 미군 1명, 그리고 민간인 2명으로 분류되었다. 와! 이게 어찌된 일일까? 말라리아가 본격적으로 부활하다니. 

보건당국은 크게 긴장하였고, 이에 긴급히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긴급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이번 말라리아 재유행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우선 그 원인부터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군 병사 1명에서 말라리아가 발생하자 미국 본토에서 전문가 몇 사람이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전문가들과 합동세미나를 가졌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 환자는 1995년 108명, 1996년 368명, 1997년 1,771명, 1998년에는 3,978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발생지역도 경기도(파주, 연천, 인천 등)와 강원도(철원 등)로 점차 넓게 퍼져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말라리아 재유행은 지금까지 30년 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의 환자 수는 연간 400-8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인류가 발생하기 전 전인류(prehominid) 시절부터 감염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말라리아의 진화적 나이는 최소한 20-30 만 년은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생물체가 멸종의 길을 가기도 하였지만 말라리아 원충은 지독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으니 단일 질환(감염병)으로는 단연코 사망 원인 1위이며 그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말라리아 예방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의 수많은 젊은 학자들이 줄지어 백신 연구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말라리아는 삼일열(vivax), 사일열(malariae), 열대열(falciparum), 난형열(ovale), 그리고 원숭이열(knowlesi) 말라리아로 모두 5종이다.

우리나라에는 삼일열 말라리아만 존재하며, 열대열 말라리아 등은 해외 여행자에서 수입형 증례로 발견되고 있다. '말라리아(malaria)'라는 이름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년)가 지었는데 나쁜(mal) 공기(aria)로 인해 생긴다고 생각하여 malaria로 명명하였다.

지금은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으로 밝혀져 있지만 이름 만은 2,400년 동안 사용되어 온 그때 그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사람과 모기에만 감염되며 다른 동물에 감염되지 않으므로 인수공통감염병이 아니다.

한국인은 말라리아와 인연이 깊다.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 말라리아로 크게 고생한 일이 있다. 온 식구 중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라리아가 유행하였다. ‘학(虐)’ 또는 ‘학질(瘧疾)’이라 부르기도 했고 ‘복학(腹瘧)’ 또는 ‘자라배’ 라고도 하였다.

국내 고문헌 중 가장 먼저 확인되는 것은 고려 의종 시절(서기 1152년) 학질이 유행했다는 기록이다. 이어서 고려 충렬왕 시절(서기 1278년)에도 학질 유행의 기록이 나타난다. 그 후에는 조선조 세종대왕 시절(1420년) 대비마마(원경왕후)가 학질의 잦은 재발로 고생하다가 결국 돌아가셨고, 형인 양녕대군도 학질로 오래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대에도(1526년) 영남 일대에서 학질이 크게 창궐하여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말라리아는 한국전쟁(1950-1953년) 직후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는 국군장병 6,311명 조사에서 1,044명(16.5%)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고, 1952-1959년에는 전국적으로 감염자 수와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다행히 1960년대에 한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합동으로 국가적 차원의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전개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1984년 마지막 환자 2명이 발생한 후에는 토착형 말라리아가 완전히 소멸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병원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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