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삼류선비] 출세한 벗들 나 좀 보소

윗것들 하고만 싸울 것이 아니라, 아랫것들도 베풀어 주쇼

2024-10-22     윤일원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소. 행복이란 이웃에 사는 동서보다 돈 더 많이 버는 일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소. 동네에 황소 한 마리만 있다면 그 집이 가장 부자고, 가장 행복한 집 아니오? 무엇이 더 부럽겠소. 

그대들은 이미 출세를 했소. 우리가 잘 아는 형이 있지 않소. 조상 잘 둔 덕분에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직에 제수되어 어린 세손을 보살폈잖소. 아마 그때 은연중 우리 이야기를 한 듯 하외다. 그러니 세손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3년 만에 그대 4인방을 발탁하여 곁에 두니, 참으로 그 형 덕분이라는 것을 감사해야 하오.

자네들이 비록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나흘에 한 번 집에 들어온다고 하지만, 궁궐 뒷마당이 산책길이요, 더구나 하루에 3번 임금을 만나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오? 

세상에 굶어 죽으란 법은 없는 법, 여태 땅속 지렁이처럼 흙만 먹고 살다가 하찮은 녹이라 하지만 먹고살지는 않소. 또 때때로 임금이 비단과 양식을 내려주시니, 이 얼마나 영광이오. 그렇지 않소!

내 꼬박 군 생활 3년 했지만, 까까머리 이등병 입소하던 날 연병장에서 별 한번 처음 보고, 군 생활 마지막 날 또 연병장에서 별 마지막 본 것이 전부라오. 별 보기도 이렇게 힘이 들거늘, 어찌 임금을 하루에 3번씩이나, 내 평생소원이 먼발치에서라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임금 얼굴 한번 보는 것이오.

그대들이 ‘사은진주사(謝恩陳奏使)’라는 신분으로 세계 최강국을 방문하여 보고들은 견문을 적은 글을 이미 보았소. 어찌 이 좁아터진 조선 땅에 입맛에 맞는 일이 하나라도 있겠소만,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해도 자랑질 참고, 손이 가만 있지를 않아도 재기를 참고, 마 그렇게 하소. 가뜩이나 마뜩하게 생각하지 않은 수많은 무리의 시샘과 비방을 어찌 감당하리오?

비방이 그럽디다. 한여름 날 말 대가리만 한 흰 구름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변해 날벼락 떨어지듯, 나도 모르는 사실이 진실인 양 온 나라를 들쑤시니, 이제는 진짜로 둔갑된 사실을 하나하나 밝혀내 거짓이라고 증명하지 않으면, 내가 진짜배기로 거짓말쟁이가 되니, 그 심정 타들어가는 나물처럼, 그대들 속도 그렇게 타들어 갈 것이오.

내 그대들에게 스스로 경계하고 삼가기를 “집안 처자가 담 밖 외간 남자 보듯 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간혹 불쑥불쑥 장관을 이야기하고, 때때로 정밀함을 논하니, 내 참으로 잘 아오. 찌그러져 지내자니 속이 답답하여 미칠 지경이고, 드러내고자 하니 시기 질투 무리가 한 바가지라, 이를 두고 오도가도 못 하는 항우(項羽) 신세라는 것을.

내 그대들의 심정을 잘 아오. 벼슬길에 나간 사대부가 비구처럼 염불만 할 요량으로 교제도 끊고 술도 끊어 오직 책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을,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날파리 같은 무리가 야단법석을 떤다는 것을, 그래도 그대들은 출세를 하지 않았소. 그러니 윗것들 하고만 싸울 것이 아니라, 아랫것들도 베풀어 주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우화등선(羽化登仙)이나 되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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