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를 썼던 원로언론인의 회한

아내는 내 말을 다 듣고 저 세상으로 간다고 했다

2024-10-16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장석영 대한언론인회 회장]

KONIBP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유튜브 캡처

지난 주말 아들과 단 둘이서 아내를 만나러 묘원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아들이 물어왔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실 때 무슨 말씀을 나누셨어요?” 

“그건 비밀인데...” 

“그럼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랑한다고 했지. 그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자고 했다.” 

“그러셨군요. 잘 하셨네요.”

그날 의사선생님이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 병실에는 나와 마지막 숨을 힘겹게 쉬는 아내만 남겨졌다. 간호사 선생님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가면서 내게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모두 하시라’고 했다. 아내는 내 말을 다 듣고 저 세상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남은 자식들은 잘 돌볼 테니 걱정 말고 편안히 하나님 곁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주님의 부름을 받으면 아내 곁으로 달려가겠노라고 약속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할 때는 미동도 않더니 내가 말할 때는 혀를 움직이는 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아내가 가족에게 베푼 헌신에 고맙다고 말했다. 절대 잊지 않는다고도 했다. 주님 곁으로 가면 이제 더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했다. 그러면 내가 천국에 가서 당신을 다시 만나 여기서보다 더 행복하게 살자고 했다. 아내의 혀 놀림은 약속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한순간 아내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는 설움이 복받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람이 누리는 오복(五福) 중의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제 명대로 살다 편히 죽는 것이다. 의술의 발달로 장수하기는 쉬운데 편히 죽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의료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차가운 침상에서 임종을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게 사느니 평온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봄이었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우리도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 등록을 해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아내가 불치병 환자이니 잘못 말했다가는 아내의 마음만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내는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등록을 받는지 지금 곧 알아보라고 했다.

나는 관할 보건소에서 받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면서 우리 동네 관할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보건소 직원은 보건소에선 취급하지 않으니 노인복지센터에 문의해 보라고 했다. 

어렵사리 전화번호를 알아내 문의했더니 직접 찾아와서 서류를 작성해야한다고 했다. 아내가 휠체어를 타야 하는데 혹시 출장 서비스는 안 해 주느냐고 하니 서울 강북에 업무 대리를 해주는 곳에서는 출장 등록도 해준다고 알려줬다.

나는 내친김에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출장 서비스를 받을 일시를 조정해주었다.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를 작성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아내가 혹시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닌지 몰라서 역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내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다. “그거 목에 구멍 뚫고 며칠 더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괜히 환자 고생만 하고 가족들 힘들게 하지요. 자연스럽게 죽는 게 훨씬 좋지요.” 

그러면서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다. “나도 당신 생각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연명치료 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삶이란 주어진 대로 끝까지 살아내야 하는 게 의무라는 것이지요.” 내 말에 아내가 대답한다.

“아프거나 무의식 상태에서 인생을 향유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존엄한 죽음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가 봐요. 지난 2018년도에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된 뒤로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 등록자 수가 244만 명을 넘어섰다는군요.”

아내가 이어서 말한다. “엊그제 방송에서 봤어요.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사고가 서울 강동 지역에서 또 발생했데요.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는데 불행으로 이어지는 일이 부쩍 늘어날지도 모른답니다. 그게 큰 걱정이지요. 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긴 간병이 가족들에게 정신적 고통보다 힘들게 하는 게 경제적 압박이랍니다.”

나와 아내는 이후에도 죽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죽음은 무섭지 않은데 무서운 것은 지금처럼 오래 자리에 누워 당신을 비롯해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죽는다는 것은 본향으로 가는 것인데 오히려 기쁜 일이라고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곧 치료제가 나올 테니 그런 소리 말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아내가 이미 ‘임종 과정’에 들어갔다는 통보를 하는 순간까지도 어떻게 더 좀 치료해 볼 수는 없는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인공호흡기를 계속 착용해두자고 할 걸 그랬나? 누가 아는가. 혹시라도 아내가 “여보, 나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괜히 내가 연명치료 중단의향서를 작성하자고 한 건 아닌가? 나는 식어가는 아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비비며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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