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법조인들 모임에서 왜 가수 임영웅 얘기가 나왔을까
[엄상익의 관찰인생] 요즈음 부자들은 완전히 다른 우주의 사람들인 것 같아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모임이 있어 오랫만에 서울에 올라왔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리풀 공원 옆 약간 경사진 도로를 지나갈 때였다. 폐지를 산더미같이 실은 리어커가 길가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지나치면서 보니까 70대쯤 되어 보이는 노파가 리어커의 손잡이를 잡고 엎드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힘에 부쳐서 리어커를 더 이상 밀어올릴 수 없는 것 같았다. 몸이 거의 땅에 닿을 것 같았다.
"뭘 이렇게 많이 실어 가지고."
안타까운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노파가 얼굴을 쳐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원망인지 도와달라는 것인지 그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이었다.
"같이 밉시다."
내가 리어커의 손잡이를 나란히 잡으면서 말했다. 리어커가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기로 가요"
노파가 눈짓으로 언덕의 중간쯤 되는 골목길을 가리켰다. 그곳에 폐지를 모으는 트럭이 서 있었다. 그곳까지 리어커를 밀고 가서 리어커 위에 놓인 사과박스를 트럭의 적재함에 던져주고 자리를 떠났다.
"고마워요."
뒤에서 그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름이 있어서 그렇지 귀해 보이는 관상인데 어떻게 노년에 폐지를 줍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해도 들어오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의 모습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부자와 빈자 양극화의 시대라고 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약속 장소인 음식점으로 갔다. 법조 선배 몇 분이 와 있었다. 모두 원로 변호사였다. 그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가진 부자들이 생기고 있어요. 게임회사 사장이 죽었는데 상속액이 2조 5,000억이라고 하더라고. 조 단위의 부자가 많아.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고 있는 건 트롯가수 임영웅이라고 하던데 상암경기장에서 하는 콘서트표가 한 장에 수십만원인데 완전매진이래.
경제신문을 보면 대충 돈 많은 사람들의 족보를 알게 되는데 요즈음 신흥 부자들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던 사람이 많더라구. 이름난 화가들의 재산도 어마어마하지. 그림에 투자한 사람들이 재미를 봤다고 하더라구. 몇 백만 원에 산 그림들이 몇 십 억이 됐다고 그래. 요즈음 부자들은 완전히 다른 우주의 사람들인 것 같아.“
신흥 부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히트곡이 있는 유명 가수의 저작권에 관한 소송을 해 본 적이 있다. 저작권이라는 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세상인 것 같다.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노래가 흘러 나가는 대로 돈을 받는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금년에 세상을 떠난 가수 김민기 씨나 그가 키운 가수 김광석 씨의 저작권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김민기씨는 나의 고교 3년 선배였다.
오래 전 대학로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이면수 구이와 계란말이를 안주로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김민기 선배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1990년대 서태지가 나오면서 그 이전의 대중음악은 다 죽었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들어갔다고 봐야지. 그때 통기타를 들고 더부룩한 머리를 한 친구가 내가 하는 대학로의 학전 까페에 나타났지. 그게 김광석이야. 그 친구는 옛 노래 중 좋은 걸 뽑아 기가 막히게 리메이크 했어. 예전 대중가요의 맥을 언더에서 기막히게 살려낸 거야. 입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들으려고 몰려 들었어. 대학로에 길게 줄을 늘어섰을 정도였으니까."
김민기는 가수 김광석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그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주현미 씨의 노래나 창법은 가히 세계적이야. 그런데 우리의 대중음악은 지금 거의 질식사하고 있어. 주변을 한번 살펴봐. 음반을 파는 집이 줄어들다가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잖아? 내가 40년 전에 작곡하고 작사한 노래들의 음반 제작권을 다 뺏겼어.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야. 그 노래들이 다 내 자식 같은데 말이야."
그런 저작권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세상이다. 새로운 시대의 부의 근원이 기술과 예술의 샘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광대나 쟁이라고 불리며 천대받고 가난하던 사람들이 스타가 되고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닐까. 나는 개벽 세상을 구경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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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법조인들 모임에서 왜 가수 임영웅 얘기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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