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정조 개혁군주 까기' 열풍 ... 정조의 상상 속 반격?

내가 개혁 군주가 아니라고 까는 데 맞아

2024-10-04     윤일원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드라마 '이산' 캡처

근자에 듣자 하니, 대한민국 서울 SNS에서 나를 직접 까는 열풍이 불기에 내 몇 마디 이르고자 붓을 들었노라.

나, 정조는 조선 제22대 왕이야. 호는 '만천명월주인옹'이고. 11살 때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지켜봤지. 살려달라고 엉엉 우는 아비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트라우마로 미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네 이놈들에게 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고 주둥이를 문(文)으로 복수하겠다"라는 결심에 있었다.

그래서 지독하게 공부했지. 물론 나를 죽이려고 대드는 놈들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지만, 태극과 음양의 이치를 깨닫고 보니 신하들의 행태를 속속들이 알겠더라고. 드디어 죽기 1년 반 정도에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으로 스스로 지었지. 내가 왕이니까.

"달은 하나이고 물은 만 종류라, 물이 달빛을 비출 때 수천 수만 가지로 형상이 바뀌나, 결국 하늘의 달은 하나, 나 정조." 

내가 얼마나 자부심이 강한지 알지? 내가 현명한 놈, 어리석은 놈, 모든 문신과 ‘다이다이’ 붙어 토의해 보니 나를 이길 자가 없더라. 또 무신들과 창경궁 춘당대에서 활을 10순(50발) 쏘면 늘 50발 명중이라, 하여 일부러 한 발은 허공에 쏴. 왜냐고? 좀 '겸손'해지려고. 그래서 군사(君師)가 된 거야. 임금과 스승의 직위를 겸직, 이것이 성군의 조건이야. 그래서 호를 그렇게 지은 거야.

내가 '개혁 군주'가 아니라고 까는 데 맞아. 난 개혁 군주를 추구하지 않았어. 개혁 군주보다 한 수 위인 '성군(聖君)'이 되기를 원했지. 세종 할아버지 왕처럼. 

요즈음 너희들 눈에는 실학자의 글만 보이지. 왜? 그들의 글이 지금의 세태와 딱 맞거든. 나머지 글들은 진부하고. 

너희들은 내가 개혁 군주가 되어 성리학만 고집하는 고리타분한 조정을 확 뒤집고 유럽(영국)으로 선비들을 유학 보내 군사, 과학, 무역을 떡하니 받아들여, 동아시아 최강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글은 코빼기도 한 보이니 내가 한심한 인간으로 보이지. 맞아?

에라, 이놈들. 너희들 팩트 팩트 좋아하니, 너희들 눈에는 세계 최강 선진국 기준이 뭔지 알아? 기대수명 80세 이상, 국민소득 3만 불 이상인 나라야. 이 지구상에 5%도 안 돼. 울 나라가 거기에 포함되고. 나머지 95%는 여전히 고만 고만들 살아. 

아직도 전 세계 95%가 너희들이 말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별짓을 다 하고 있는데 잘 안 되잖아? 그것을 내가 못 했다고 징징대면서 나를 까는 거야! 진짜 언빌리버블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 하지? 혹 일본 지배 36년의 트라우마야? 그래서 외눈박이가 되어 그 시각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거야? 짱돌 같은 놈.

나, 그때 조정에서 판치는 성리학 때려 부수고, 곧바로 과학기술 서적 수입하다가 번역해서 쫙 뿌리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 그러면 내 죽기도 전에 한강에 철교가 만들어지고, 대포가 만들어지고, 신세계로 가는 배도 만들어질 줄 알아? 아이고, 이런 한심한 것들!

너희들 지금 코 앞에 AI 시대 맞지? 그러면 국회가 "짠, 세상은 이렇게 바뀌니 군사, 행정, 경제, 교육, 이 모든 것을 AI 시대로 바꿔" 이렇게 논의하면, 내일이면 챗Gpt가 나오고 엔비디아(NVIDIA)가 만들어져? 맨날 정치싸움만 하잖아? 비실용적 문제. 권력 싸움질. 혹 개혁 입법이라도 하면 온갖 기득권 소리 잔뜩 늘어놔 방해하고. 지금 너희들도 못하면서 내보고 다 하라고. 그게 말이 돼? 

내가 오늘 큰놈을 앉혀 놓고 혼 좀 낼 거야. "이놈아, 애를 어떻게 가르쳤길래 그 모양 그 꼴이냐, 서울대는 기본에다 하버드, MIT는 식은 죽 먹기 아니야. 요건 요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아직 그놈 장가도 안 갔어. 손자도 없는데 벌써 하버드 타령이야? 이게 논리적으로 맞아?

이놈들아, 세상이 바뀌려면, 떼돈을 벌어야 해. 떼돈! 그것도 요행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한 놈이 아니라 무더기로. 다른 방법이 아니라 똑같은 방법으로. 그때 사람 눈이 뒤집혀지고 세상을 바꾸려고 해. 

영국의 젠틀맨, 무역으로 떼돈 번 사람. 산업혁명 시대 발명가, 신기술로 떼돈 번 사람들. 일본 사무라이, 설탕으로 떼돈 번 사람. 지금 IT 창업가, SW로 떼돈 번 사람. 이 사람들이 태풍의 눈이야.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잖아. 안 바뀌면 쿠데타를 꿈꾸고. 그렇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혁명'을 했지. 피를 불렀지. 인적 청산. 왕의 목을 자르고, 왕궁을 불태우고. 그때뿐이야. 세상은 바뀐 듯하지만, 주류만 바뀔 뿐 내 조건, 기대수명과 삶의 질은 바뀌지 않았어.

너희들 눈에 비친 요상한 단어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있을 거야. 문체(문법)로 반정, 쿠데타를 일으킨다. 뭐 그런 뜻. 중종반정, 인조반정, 모두 '반정'이라는 단어를 쓰지? 반정하면서 반대편 사람 잡아다 죽였지. 문체반정을 주도한 인물이 연암 박지원이야. 그래서 연암을 경상도 안의 현감으로 보내면서 한마디했지.

"야, 너 지금의 문투 버리고 온순한 문장으로 새로 지어봐. 그러면 봐줄게." 

그래서 주옥같은 글이 쏟아진 거야. 막 신났지. 온갖 상상이 동원된 글. 지금 너희들이 읽어도 "아하, 그래" 하면서 무릎을 탁탁 치지. 그런 그의 글을 읽고 나를 까는 거 알아.

그래, 내가 죽은 지도 벌써 224년이 지났네. 아쉬운 점도 많지. 중농학파가 아니라 중상학파들을 대거 등용하여, 저 남해안 섬에다 그들의 이상을 실험이라도 했으면, 내 후손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지는 않았을 거야. 최소한 만주벌판 정도는 우리 땅이 되었을 거고. 마흔여덟에 내가 죽을지 어찌 알았노? 지금 같았으면 30년 더 왕 생활 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변혁 이루었잖아. 박정희라는 사람 나왔고, 떼돈 번 사람들이 주류로 바뀐 것 말야.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세대 교체하지 못했어. AI 시대에 새로운 계층이 만들어지려나? 아니면 북한처럼 인민 혁명으로 주류를 바꿀 꿈을 꾸나? 그러지 말어. 주류만 바뀔 뿐 오히려 퇴보해. 지금이라도 나를 까는 거 좋으나 정신들 좀 차려. 매우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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