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일회성 관계'에서 지갑을 쉽게 열까?

[윤일원 삼류선비] 가까운 지인에게는 무수히 많은 쉴드를 치면서 상대방 '의도'를 분석

2024-09-27     윤일원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영화 '친구'

잔혹한 범죄,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알고 보니 가까운 사람'이더라는 뉴스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겪는 일상 경험으로도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법칙이다.

차라리 출근길에 불쌍한 사람한테 돈 1만 원 주는 게 더 편하고, TV에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후원금 내는 것이 더 편하다. 왜냐하면 모두 일회성 거래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분화되기 이전 원시 부족사회의 인간관계는 매우 심플하다. '친구, 적, 이방인' 단 3종류밖에 없다. 

'친구'의 정의는 1차적으로 자신이 속한 무리나 마을 구성원과 자신의 무리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이웃 무리와 이웃 마을의 구성원이다. '적'의 정의는 친구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모든 무리다. '이방인'은 친구와 적에 속하지 않은 제3자다.

이들의 지위는 매우 다르다. 친구한테는 마을을 개방하고 식사를 함께 하며 모든 것은 자신의 가족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한다. 적은 살해 위협을 각오해야 한다. 이방인은 경계와 의심 혹은 우호적 관계를 취하는데 대체로 농경 민족은 의심과 경계를 유목 민족은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인간이 문명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친구와 적은 언제나 분명하였지만, 이방인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분화되었다. '거래' 때문이다. 거래에는 늘 이해(利害)가 뒤따른다. 해양 세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서양은 '계약'을 중요시했지만, 동양은 오랜 이웃 관계로 집단 시선을 중요시했다. 모두 배신을 막고자 하는 행위로 계약은 대포와 총칼도 불사한 강한 응징이 수반되었고, 집단 시선은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적 따돌림에 기반을 둔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에 일회성 인간관계라면 오히려 손쉽게 지갑을 척척 열지만, 가까운 지인에게는 무수히 많은 쉴드를 치면서 상대방 '의도'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표적 쉴드가 '돈'이다. 이미 아파트 평수가 친구를 가르는 기준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어른들의 모임에도 교묘하게 '회원권' 혹은 '회비'라는 명목으로 쉴드를 치면서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지"를 요구한다. 모두 자기 방어 기제로 사전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는 심리이며, 배신이 의심된 자에게는 강한 따돌림이 시작된다. 

"믿음이 부족하면 언제나 불신이 있게 마련이다(信不足焉, 有不信焉)." (‘노자’ 제23장)

회오리바람도 아침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소낙비도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자연도 이럴진대 사람의 일이야? 손실을 따르는 자는 손실과 같아지고, 덕을 따르는 자는 덕과 같아지고, 믿음을 따르는 자는 믿음과 같아진다.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세 번 손을 내밀어라. 그러면 ‘즐길 락(樂)’도 함께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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