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에 난리친 국민이 '서해 피살 공무원'에는 무덤덤했던 이유?
[윤일원 삼류선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요즈음 북서풍의 계절이 아니다. 예전 겨울철 산에 오르면 온갖 ‘삐라’를 저 멀리 낙동강 근처인 시골 마을에서도 보고 신고도 했지만, 지금 유월은 남서·남동풍이 부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오물을 잔뜩 넣고 남으로 풍선을 날리니, 어쩌다 바람의 방향이 맞으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치 초딩들 유치찬란한 싸움처럼 “니 똥 굵어”하고 침을 탁 뱉던 그런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에 전 국민이 화들짝 놀라면서 와글와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물론 의외로 반향도 크다.
오물풍선의 논의가 확대되어 “거기에 GPS 달고 고성능 폭탄을 달면 국방부 막을 수 있어?” 하는 실용파에서, “아니, 우리 국민을 뭐로 보고 유치찬란 찌찌 뽕 장난질이여?” 하는 명분파에다,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어유?” 하는 근심파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 년 전 2020년 9월에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마저 묻게 한 사건이 서해에서 발생했다.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원 공무원이 업무를 수행하다가 북방한계선(NLL)으로 흘러 들어가자 우리 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한 뒤 시신을 불태운 사건이 발생했다. 최초 실종 28시간에 북한군에 발견되었고 6시간이 지난 다음 사살당했다.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한류로 문명화된 국가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방방 알린 나라의 국민 자존심으로 광화문에 모여 북한을 규탄함을 물론 정부의 실책을 따져야 함에도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는 기이한 행태도 벌어졌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우리의 인지력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왜 이토록 사소한 일에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만,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는 왜 이리도 무덤덤하게 행동할까?
1987년, 텍사스 미들랜드에서 생후 18개월 된 제시카 맥클루어 아기가 이모네 집에서 놀다가 그만 6.7미터의 버려진 우물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CNN은 즉각 생중계함은 물론 아기의 전 구조과정을 낱낱이 분석하면서 극적 구조 장면의 기쁨을 배가시켰다. 결국 제시카는 사고가 난 지 58시간 30분 만에 구조되었다.
그로부터 7년 후 르완다에 대량 학살로 80만 명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CNN은 아기 제시카의 구조에 할애했던 방송량보다 훨씬 더 적은 분량으로 그저 외신 몇몇 심층 분석 보도로 끝낸 것을 두고, 제국주의 잔인함 혹은 자국 우선주의의 편파 방송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고 해석해야 하는가?
일찍이 소련의 스탈린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라고 했으며, 테레사 수녀도 “내가 저렇게 많은 사람을 봤다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있는 한 사람을 보았고, 그래서 행동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라는 비슷한 말을 했다.
사회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인식 가능 희생자 효과(The Identifiable Victim Effect)'라 부른다.
우리가 인지한 사건이 내가 잘 아는 내용으로 나도 모르게 생생함이 밀려와 움찔하거나 소름이 돋으면서도 내가 무엇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으면 관심을 폭발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인지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낯선 사건으로 발생한 비극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 그러면 “그건 내 일이 아니라, 국가(남)의 일이야” 하면서 스스로 감정의 문을 닫게 된다.
이는 인간 본성에 기인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세간의 관심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은 일’에 관심을 두더라도, 국가 사무를 꼭 세간의 관심 무게만으로 일의 무게를 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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