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물까기' 열풍 ... 세종도 도마 위 올라

[윤일원 삼류선비] "그때 이랬을걸" 하는 바람이 지나쳐서 "그것을 지금의 현실화"로 착각하는 순간

2024-06-09     윤일원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연천군 호로고루. 연천군 유튜브 캡처

연천에 가면 '호로고루'가 있다. 고구려의 전초기지 망루다. 삼각형 모양의 망루는 양변이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임진강이 흐르고 밑변만 일자로 성을 쌓아 천혜의 성채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고구려 유적의 희소성뿐만 아니라 시원한 풍경으로 마주한 신라의 칠중성보다 더 자주 찾게 된다.

연천군은 이곳을 '통일바라기'라 이름 짓고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해바라기가 활짝 피도록 조절한다.

어정쩡한 이맘때면 보리를 심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옛향수란 진짜 추억이 있어야 느낌이 오는지라 다들 도회지 출생이 많아 '보리'의 추억이 그저 '문학'의 추억이 되어 상상으로 펼쳐진다.

한 일행이 지나가면서 "보리가 색이 바랬어요?" 하니 모두 수긍하는 눈치를 보이면서 맞장구를 친다.

보리든 나락이든 싹이 틀 때는 연둣빛이었다가 성장하면 검푸른 빛을 띠게 되고, 이삭을 맺으면 누렇게 변한다. 늘 푸른 보리도 없고 늘 푸른 나락도 없다. 모두 문학에서 배운 '청보리'만 기억하는 도회지 사람에게는 누런 보리는 빛바랜 보리가 된 것이다.

요즈음 심심찮게 논의되는 것 중 하나가 '조선시대의 위대한 인물까기' 열풍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자 발음 표기로 만든 것뿐이고, 퇴계의 학문은 그저 중국 사상을 카피해서 번역한 것뿐이고 더구나 노비를 수백 명 거느린 위선자이고, 정조는 개혁 군주는커녕 시대에 맞지도 않은 화성을 짓거나 심지어 산업혁명이 코앞에 온 것을 놓친 멍청한 군주라고 폄훼하기 일쑤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참으로 엉터리다. 

모두 조선이 시대 흐름을 잊고 성리학에 매몰되어 산업혁명을 놓친 안타까움의 발로라 하지만, 서양에서조차 프랑스와 독일이 뒤늦게 산업혁명에 합류하고 동유럽이나 러시아는 일본보다도 더 늦게 참여한 것을 보면, 서유럽의 독특함이 돋보여 그렇게 된 것이지 조선만이 멍청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과거 시대의 '나쁜' 제도를 지금의 제도와 비교하여 비판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시대 상황을 무시하는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범해서도 안 된다. 

'근본적 귀인 오류'란 어떤 사건의 원인으로 환경적 요인이나 특수한 외적 요인보다는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 등 내적 요인에서 찾으려는 경향이다. 그 결과 어떤 사건에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외부 요인과 환경 변화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운칠기삼'이라 하지 않았는가? 경험적으로 외부 환경 요인이 70% 이상은 된다.

그런 논리라면 서부 개척 시대 인디언을 몰살하고 땅을 빼앗은 미국은 존재해서는 안 될 나라이고, 해적질로 먹고산 영국은 허울만 잔뜩 덮어쓴 비신사적 나라이고,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 조선을 까기 위해 등장한 나라가 아닌가?

"그때 이랬을걸" 하는 바람이 지나쳐서 "그것을 지금의 현실화"로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반면교사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부정하는 인지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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