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비봉 시절풍자] 훗날 역사서에 기록된 '조국의 전설(傳說)'

그는 특이하게도 키높이구두를 즐겨 신었으며, 이유는

2024-06-03     검비봉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검비봉 논설위원]

조국 페이스북 캡처

한반도 오천 년 역사에 이렇게 낯 두꺼운 인간은 처음이다.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역사서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어 나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소개할까.  

‘미국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부터 간신히 독립하였으나, 100년도 지탱 못 하고 망하다.  

이유는 저들끼리 사상 논쟁으로 수백 만을 살륙하고, 정변이 잦더니, 나라가 발전 동력을 잃고, 정치보복과 혼란으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사에 큰 획을 그은 명망가들 중에 조국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명망이 높아서 당시 국가원수도 신세를 많이 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국은 학자, 법률가이자, 행정가, 계몽가, 사상가, 대학교수로서 위대한 명언들을 많이 남겨서, 후대까지 전한다.

벼슬은 등과급제 없이 단번에 판서에 기용되기도 하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키높이구두를 즐겨 신었으며, 이유는 남들보다 7cm라도 더 높은 조감적 시야(鳥瞰的視野)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출퇴근 시, 한 손에는 항상 포탄을 들고 다녀서, 마치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던 디오니게스를 연상케 했으나, 나중에 그것은 포탄이 아니고 금속으로 된 물병이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예리하고 명철한 논리로 쉬임 없이 명언들을 많이 쏟아내어 첩첩이 쌓아올렸는데, 그의 발언과 사상에 매료된 자들에 의해 그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학파가 생겨나,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그를 추종하는 수십만 대중이 매일 거리에 나와 그를 연호하고 열광했다고 매스컴이 전하니, 학자로서 그처럼 당대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은 사례는 인류사에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의 학과에서는 용도가 불분명한 복사, 위조, 변명 등에 대하여 특별한 훈련을 실시하는데, 이유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까지 연결되는 고차원적 학풍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의 어록에서 고른, 아래 몇 문장만 보더라도, 그가 사회부조리와 집권층의 독재와 위선에 대해서 얼마나 냉철한 시각으로 꾸짖으며 대중을 선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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