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를 비우며 꽃과 마주하다!... 老시인의 단식법

건강법이란 결국 창자를 깨끗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것(정장정혈整腸淨血)이 그 핵심

2024-03-11     이병철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매화

며칠 동안 단식하고 있다. 생수만 마시는 단식은 아니고 당근, 사과, 양배추를 함께 갈아 그 즙을 마시는 야채쥬스 단식이다. 이 야채쥬스는 사과, 비트, 당근을 착즙한 ABC(Apple, Beet, Carrot)쥬스와 함께 CCA(Cabbage, Carrot, Apple) 쥬스라는 이름의 요즘 핫한 쥬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생수만 마시는 단식보다는 흔히 영양소의 3대 요소라고 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섭취는 중단하고 그 대신 비타민, 미네랄 등 생명체 유지에 필수요소는 섭취하는 것이 단식하기에도 편하고 그 효과도 크다고 해서 많이 권장되는 단식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단식을 해온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해마다 거의 두어 차례는 계속해 왔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새해맞이 비움의 잔치’라는 이름의 공동단식도 여러 차례 이끌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몇 해 동안은 단식을 하지 않고 지냈다. 사실은 귀찮다는 것이 단식을 중단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인데, 명분은 ‘단식 또한 몸에 가하는 폭력’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우고 있다.

내가 ‘밥이 생명이고 하늘’이라는 해월신사의 '이천식천(以天食天)'에 대한 가르침을 스승으로부터 받은 뒤부터 ‘밥’은 오랫동안 나의 중심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 쓴 책도 ‘밥의 위기, 생명의 위기(94, 종로서적)’였다.

밥이 곧 천지부모의 젖이요, 생명이자 하늘이라는 생각을 품으면서 밥 한 톨의 의미와 더불어 자연스레 과식이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1일 2끼 식을 계속해왔던 것이나, 발이 달린 육식을 하지 않는 것 등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채식주의자나 무슨 수행자는 아니다. 다만 과식과 육식이 몸을 망치게 하고 다른 생명들과 지구 생태계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완전한 채식(비건)을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고 하루 한 끼니만 드는 이들도 없지 않은데, 나도 그렇게 해 볼까 하다가 이 또한 거기에 얽매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져 그만두었다. 그동안 수십 년 아침을 안 먹는 식사를 이어오다가 요즘은 아침을 내가 지난해부터 개발한(?) 현황보인탕(玄黃輔仁湯)으로 하고 점심은 일반식으로, 저녁은 먹지 않고 있다.

이번에 내가 오랜만에 단식을 하게 된 것은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은 줄어드는데, 먹기만 하고 잘 움직이질 않으니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 몸에 쌓아오기만 했으니 이제는 다시 비울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느껴졌다고 할까. 아무튼 그래서 장(腸)을 좀 비워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단식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며칠 단식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내도 '영감이 굶고 있는데 자기만 혼자 먹을 수 없다'며 내외가 함께 단식하게 되었다.

단식의 의미와 효능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내가 그 부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 싶은데. 이번에 좀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창자를 비우는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단식요법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로부터의 영양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이에 따른 '자가포식(오토파지autophagie)'을 통한 정화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자 속의 미생물군(群)을 유익균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우리가 먹는 것은 결국 대장에 사는 미생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물인 그 먹이에 따라 대장 안의 미생물 균류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장내의 미생물들이 유익균 중심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 유익한 미생물들이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식을 통해 장내 미생물을 유익균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음식물 공급의 중단과 더불어 창자(대장) 속에 있는 남은 찌꺼기를 말끔하게 비우는 장 청소 과정, 그리고 보식과정에서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야채식의 중요성이다.

창자 속 찌꺼기를 말끔하게 비우는 것이 유익한 미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새로운 둥지를 만드는 것이라면 야채 중심의 보식은 새로운 둥지에 깃들인 유익균들에게 영양을 제공해서 대장 속 미생물들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단식이란 단식, 장청소, 야채 중심의 보식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이라 하겠다.

건강법이란 결국 창자를 깨끗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것(정장정혈整腸淨血)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장(腸)이 고르고 깨끗해야 피가 맑아지는 것이니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단식요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식 중의 장 청소 방법으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번 단식에서 나는 커피 관장을, 아내는 소금물 관장을 했다.

이미 천지간에 봄이 시작되었다. 온 산천이 새봄맞이로 술렁이고 있다. 모든 생명붙이가 저마다의 봄을 열어가고 있다. 앞마당의 산수유와 매화도 벌써 피었고 수선화도 샛노랗게 꽃망울을 열고 있다.

이제는 나도 나의 봄을 열어가야 할 때이다. 봄맞이를 위한 창자 비우기는 내가 나의 봄으로 피어나기 위한 일이라 싶다.

오늘 단식 이레째, 보다 상큼해진 몸으로 이 봄에 먼저 피어난 매화와 산수유꽃과 마주한다.

이 꽃들 모두 새봄을 열기 위해 긴 겨울 시린 바람 속에서 단식하며 제 속의 찌꺼기를 말끔하게 비웠던 그 나무에서 피어난 것들이다. 봄꽃들이 유난히 맑고 눈부신 것은 이런 까닭이다. 나도 나의 봄을 이리 열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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