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공무원이 본 '양평 고속도 전쟁'...정부는 이슈파이팅에 졌다
민주당의 음모론에 대응하는 여당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
나는 광주광역시에서 도시계획·교통국장을 지냈다. 내가 바보가 아닌 한, 행정을 오래 해봤던 경험으로 지금 행정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일들의 내막을 알 수가 있다.
일부 시민단체나 민주당이 제기하고, 원희룡 장관이 백지화 발언으로 불을 질러버린 ‘양평고속도로 종점변경으로 김건희 여사 처가 봐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 민주당이 퍼붓고 있는 정치공세(국정조사)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있다는 논거는 이렇다.
첫째 김건희 여사 처가 땅 때문에 시·종점을 변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고속도로 노선변경과 일반도로 노선변경 효과를 혼동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도로가 개설되면 지가(地價)가 상승한다는 말은 2차선 시군 지방도로나 국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십 수 미터 위로 지나가는 도로가 지가상승에 도움이 되지도 않거니와 도시를 단절하여 불편하게 만든다. 국도의 경우에도 자동차 전용도로는 지가상승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데 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다.
철도역 위치가 중요한 것이지 노선은 중요하지 않듯이 고속도로의 노선 변경은 인터체인지(IC) 위치 변경과 다르게 별로 의미가 없다. 종점으로 변경계획이었던 양평 강상면에는 이미 남양주 IC가 있기 때문에, 중부 고속도로와 접속( JC)후 추가로 IC를 만들기도 어렵다.
차라리 지난번 남양평 IC 만들 때, 김 건희 여사 처가 땅이 근처에 있다고 문제 삼는다면 그나마 말이 될 수 있지만 노선을 변경하여 중부고속도로와 접속한다고 하여 특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도로 업무를 봐본 사람은 다 안다.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둘째, 사업추진 시행 과정에 관한 이해부족 때문에 시점 종점 변경이 마치 엄청난 일인 양, 주장하는 것도 넌센스다.한마디로 도로나 철도 사업에서 당초 예타 내용대로 기본계획이 수립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비타당성 조사 ‘예 타’는, 그야말로 ‘예 타’다.
‘예타’를 통과하기 위해 IC 숫자를 줄이거나, 철도역의 수를 줄여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기본계획 수립 시 실제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경우도 많다. 당초 통과된 예타 예산의 20%를 넘지만 않으면 재심사를 받지 않으니, 사업추진 기관들은 예산 증가 20%이내 범위에서는 사업계획을 변경하거나 자주 수정하는 편이다.
‘예타’에서 제시한 사업비가 20% 이상 증액되거나 예상수요가 크게 감소되면 타재(타당성 재조사)를 해야 한다. 도로나 철도건설시 국토부가 기본계획 수립 시에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기재부는 ‘타재’를 요구하게 된다.
지금의 과정은 예타를 마치고 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도, 양평지역 시·종점 위치에 따른 이해관계자 누군가의 의도나 입김이 개입되고 이런 사업추진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위세과시나 선거운동용 먹잇감이 되어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종점 변경 이해관계 직접 당사자가 김건희 여사 처가가 아니고, 그들은 개입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짐작컨대 양평지역 정치 입지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예타’ 노선과 기본계획 노선이 달라지는 이유는, ‘예타’에 비해 기본계획 수립이나 설계 과정에서 주민이 사업내용을 알게 되고 여러 가지 요구가 많아지게 되면서 타당한 민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타 사업 노선이 기본계획이나 설계에서 변경되는 건 비일비재하다.
셋째 일반직 공무원이 문제가 되면 신분상 큰 위험이 따르는 노선 변경 업무를 엔지니어링 회사나 타당성 조사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김건희 여사의 땅이 있다는 이유로 노선을 변경하는 엄청난 도박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국정원 같이 국가 기밀을 다루는 부처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백만 수천 만 명이 관심을 가지고 알게 되는 수도권 고속도로 선형 변경에 대하여 국토부가 비밀리에 또는 용산의 오더를 받아서 처리할 수가 없다.
설령 오더가 내려와도 국토부 담당 실·국장은 비서관에게 가서 보고를 할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관련부처의 의견이 반영된다. 대통령실 비서관은 이런 문제에 무척 예민하다.
양서면 원안이 더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위에서 강상면으로 하라고 지시가 내려온다고 하면, 결국 관계자의 입을 통해 알려지게 마련이고 진행도 되지 않고 이번 같은 소동이 아닌, 진짜 시끄럽게 되며 정권까지 위협할 것이다. 그야말로 '게이트'가 된다.
정부가 여당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은 정치인이 아니다. 공무원이 정치인이 주문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건설 후 교통효과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하고 있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동부지역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은 6번 국도를 이용하게 되는데, 양서면 남쪽인 강상면에서 양평고속도로와 만나야 6번국도 상행선 상습정체가 완화된다.
민주당의 음모론에 대응하는 여당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상대는 공부를 해서 일단은 그럴 듯하게 공격을 하고 있는데, 여당이나 국토부는 전혀 방어를 못하고 공격의 빌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까막눈들이다.
국민은 국토부의 해명 내용이 무슨 말인지 어떤 사연이고 내막인지, 알아먹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맥을 제대로 짚은 방어와 역공격을 못하다보니 정치선동에 능한 야당 정치인들에게 활개 치는 판을 깔아주고 만 것이다. '이슈 파이팅'에서 완전히 졌다.
게다가 아무리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서 화가 난다고 ‘사업 전면 중단’을 분풀이하듯 선언해버린 원희룡 주무장관의 어린애 철부지 같은 태도는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