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홍범도는 레닌이 하사한 권총으로 독립군 2명 사살 뒤 도망

홍범도는 상해임시정부를 인정 않는 경로를 지속했으며 이르쿠츠크 공산당의 결정을 따라 소련 내전에 필요한 적군에 편입

2023-08-31     최보식

강호논객 한정석

홍범도 논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종지부를 찍는 것이 옳다고 본다.

1. 홍범도는 19184월 하바롭스크에서 조직된 한인사회당과 한인사회당 적위군의 창립에 관계했으며. 1921124,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탈퇴하고 한인사회당을 창당한 이동휘를 따라 한인 적군(赤軍)인 고려 빨치산에 합류했다.

2. 이후 홍범도는 자유시에서 상해 임정을 인정하는 한인 독립군들과 결별해 소련 공산당 적군의 편제에 따른 고려혁명군으로 이전했으며 그의 부대는 소련 공산당의 명령에 따르는 고려혁명군 제3연대 휘하 제2대대로 편제됐다.

3. 고려혁명군의 지휘관으로는 연해주에서 한인들을 포함 민간 4천여명을 학살한 아무르의 도살자, 칼란다라시빌리(여단장)가 코민테른에 의해 결정됐다.

4. 소련 공산당이 고려혁명군을 조직한 이유는 항일이 아니라 러시아 백군(白軍·황제 군대)과의 전투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과 일본 간에는 적대행위 금지 조약이 맺어져서 대일 전투를 치를 일이 없었고, 실제로도 없었다.

5.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1921)’으로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상해파 독립군들 재판에서 재판위원으로 참석해 반혁명죄를 선고함으로써 소련 적군의 독립군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후 이 재판은 이동휘의 코민테른에 진정함으로써 잘못된 판결로 확인되고 상해파 독립군들은 석방됐다. 하지만 억울함에 탈출하려던 많은 독립군들이 사망하거나 처형됐고, 강제 노동과정에서 숨졌다.

6. 이에 홍범도를 찾아가 항의하고 체포하고자 하는 상해파 독립군 김창수와 김오남 2명을 홍범도는 레닌이 하사한 권총으로 사살하고 도망갔으나 체포되었고 레닌의 친서로 풀려났다.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됐다.

종합하면 홍범도는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경로를 지속했으며 결정적으로 이르쿠츠크 공산당의 결정을 따라 소련 내전에 필요한 적군에 편입했다.

결론: 만일 대한민국의 법통을 상해 임시정부에서 찾는다면 홍범도는 1921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임시정부가 승인하는 독립군들에 대한 반역적 행동을 취한 것이며 조선 해방에 의지가 없고 임시정부를 승인하지도 않는 소련 공산당의 군대에 스스로 편입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속았거나 피치 못했다고 해도 그것은 홍범도의 잘못된 판단의 과실이며 임시정부의 군대로서 김좌진, 이범석 등은 그런 위험을 알고 자유시를 떠나 자신의 독립군을 유지 보호했다. 따라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홍범도를 독립 공헌 인사로 기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