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변호하는 정치인·교수·작가들에게... 부실 팩트 검증
홍 장군은 러시아 적군의 독립군 진압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부대를 다 빼냈다?
강호논객 한정석
국방부는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이유로 △소련공산당 중심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자유시 참변’재판위원으로 참가했으며 △이후 러시아 붉은 군대 대대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이 1921년 6월 발생한 자유시 참변(독립군이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해 소련군과 벌인 교전)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편집자 주)
매스컴 인터뷰 등을 통해 홍범도 장군 변호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사학과)는 국방부 주장에 대해 "외형적으로 그럴듯하지만, 홍 장군은 러시아 적군의 독립군 진압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부대를 다 빼냈다"며 "홍 장군을 '가해자'라고 보는 건 침소봉대"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자유시 참변 6개월 후 전모를 파악한 홍 장군은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탄원서를 소련 정부, 러시아 공산당, 국제공산연맹 측에 제출한 사실이 있다"며 “ 탄원서 제출 시점은 1921년 12월이며 홍 장군 외에 최진동, 이청천, 이병채, 허근 등 대대장급 29명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과연 변 교수의 이런 주장이 옳을까.
① 부대를 다 빼냈다?
부대를 다 빼낸 것이 아니라, 만주로 돌아가자는 ‘상해파 독립군’들에 반대해 본인의 부대는 러시아 적군(赤軍)과 ‘이르쿠츠크파 독립군’의 요구대로 무장해제를 하고 적군 진영으로 먼저 넘어간 것이 팩트다.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위상으로 봤을 때 이 결정은 대단히 심각해서 ‘상해파 독립군’들은 돌아가지도 못하고 무장해제도 못하고 있다가 당한 것이다.
② ‘자유시 참변’ 탄원서 제출?
이 부분은 완전 날조다. 소련 문서 '중대사건 판결 <붉은 군사> 제2호 1921년 12월 24일자에 의하면 체포된 상해파 독립군 재판은 1921년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재판위원장은 채동순이었으며, 위원은 홍범도와 박승만이었다. 이 재판에서 홍범도는 이들을 '반혁명죄'로 증언했다. 그런데 어떻게 다음 달(12월)에 홍범도가 '전모를 파악하고 탄원'했다는 건가? 당시 최진동, 이청천, 이병채, 허근 등이 1921년 9월과 10월, 두 차례 ‘성명서’를 낸 것은 맞다. 다만 이때 이들은 ‘이르쿠츠크파’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자유시 참변’에 상해파 독립군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그걸 혼동한 듯하다.
③ 북한노동당이 아니라 소련공산당에 가입했으니 문제 없다?
진짜 역사를 모르니 이런 허황된 논리에 빠지는 것이다. 독립군 투쟁사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해 봤다면 그런 소리 못한다. 홍범도가 연해주로 가서 소련의 지원을 받으려 했을 때, 소련 공산당의 계산은 이주해 온 독립군을 무장시켜 백군(白軍·황제파)과의 전투에 내보낼 생각이었다. 이 부분은 소련 문서로 다 밝혀진 것이다.
처음부터 홍범도의 연해주 이동에 반대했던 김좌진은 공산주의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으나 이미 공산주의자 이동휘에게 포섭되었던 홍범도는 이동휘가 만든 한인 사회주의 빨치산에 가입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이동 후 낌새를 간파한 김좌진은 비밀리에 자유시를 탈출해서 만주로 돌아갔고, 홍범도는 무장해제 요구를 받아들여 소련 적군으로 넘어갔다. 나머지 독립군들은 학살되거나 포로로 잡힌 후 처형, 혹은 강제 노역에 배치됐다. 자, 양심과 상식이 있다면 판단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