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후배가 광복회장 이종찬에게,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취임했을때 솔직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반신반의

2023-08-28     최보식

김영교 예비역육군준장·공학박사

얼마 전 이종찬 광복회장이 취임했을때 솔직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반신반의했다.

그나마 반신이라도 한 것은 지난 정부 5년간 저질렀던 고 김원웅 광복회장의 행태와 망발, 비리 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의한 사유는 조부가 국가에 큰 역할을 한 후손으로 노블리즈 오블리즈 정신에 따라 바르게 살 것으로 기대했지만 권력을 쫒아 '갈지()자'로 행동해온 선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취임에서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는 연호(年號) 변경을 주장하고, 1948년 건국 부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추진을 이승만 괴물기념관운운했다.

대한민국은 1945815일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이 된 후에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해 유엔한국임시위원회의 감독하에 19485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국회가 결성되었고 717일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정식으로 정부가 수립되어 국제사회 승인을 받음으로써 1948815일 건국되었다.

그 이듬해인 1949524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3·1(31), 헌법공포기념일(717), 독립기념일(815), 개천절(103)4대 국경일로 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정 과정을 거쳐 헌법공포일을 제헌절,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수정하였다.

해당 수정안이 제5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으며, 1949101일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48815일이 광복절 국경일로 지정된 것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주장하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 건국설의 허구성은 이렇다. 몬테비데오 협약 제 1조에 따르면 국제법상 인정하는 국가의 구성요소에는 정주하는 인구와 명확한 국토가 있어야 하며 정상적인 정부가 수립되어 자주적인 외교권 등을 갖는 주권이 있어야 한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1919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난 해이고 독립운동을 지휘할 애국지사단체가 발족된 것이다. 독립 또는 건국을 위한 한시적인 단체가 바로 상해임시정부인 것이다. 국제법상으로 인정하는 국가의 구성요소 어느 하나의 항목도 갖추지 못 했으니 건국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임시정부의 6차까지 헌법에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한시적인 건국준비 조직이라고 명시되었다. 이 강령에서 194111월 임정 활동을 건국 이전에 나라를 되찾는 복국기활동으로 규정한 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요원들은 미국, 중국에 국가승인을 요청했지만 거절되었다.

또 김구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하지 못 했으며 임정 수립은 건국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있다. 일부 야당 정치인이나 좌파적인 인사들은 김구를 국부'로 추앙하지만 실제 김구 본인은 단호하게 임시정부는 건국을 위한 한시적인 단체이므로 해방 이후 1947년에도 건국실천원연구원을 준비하자고까지 주장했다.

조부 이회영과 친척 이시영을 둔 독립운동가 집안 이종찬 광복회장이 사심으로 1919년 임시정부 건국설을 주장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진상을 잘 모르고 잘못된 흐름에 추종해왔다고 본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권력 주도세력이 바뀌는 과정에서 좌·우 정권 할 것 없이 이승만 대통령'을 지우거나 격하시켜왔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성격도  변질되기 시작했다.

국경일인 8.15일 광복절은 1945년 일제 하 해방의 경축도 포함되지만, 사실은 1948815일인 대한민국이 태어난 건국 또는 정부수립이라는 가치가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광복회장 이종찬은 조부께서 독립운동을 하고 실제 건국준비에 기여한 공로에 걸맞게 올바른 역사관으로 재무장하여 후배와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행동을 하시길 충심으로 고한다.

육사 출신인 이종찬 회장님, 육사 후배로서 정말 실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