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조의 낭만] 지 성질을 못 이기고 파닥거리다 죽어버려

그 맛있었던 전어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맛보게 하겠다는 끝없는 욕심

2023-08-12     신광조 객원논설위원

요즘은 여름부터 전어를 맛볼 수 있지만 가을이 오면 가장 맛있어 기다려지는 게 전어다.

전남 강진의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장독대 곁에 앉아 가을 햇살을 받으며 된장 고추장 고추와 마늘 깻잎만으로 전어를 통채로 싸먹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학교 3학년때 쯤이다. 면장을 한 번 지내고 한문훈장과 한약방을 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나를 바둑기사로 키우려고 김봉환이라는 프로바둑기사를 초청해 바둑도 두게 했다.

"무엇이든지 잘 할 놈입니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사납게 두는 놈은 처음입니다. 대부분 겁이 없는 바둑은 크게 성공합니다. 김인 못지 않습니다."

유창혁의 바둑을 보고는 바둑기사의 길을 갈걸하고 후회했으나, 이창호를 보고는 안 간 걸 잘했다 싶었다. 바위처럼 침착해야 대성한다는 걸 알았다. 이창호 만큼 바람이 일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다시 전어 이야기다.

바닷가에서 바지락 꼬막을 잡는 아주머님들은 여름이 지나면 쌀이 요긴했다. 누가 몸이라도 아프거나 밥 맛을 잃으면 선생님 가정방문이라도 있으면 쌀밥을 해줘야 했다.

전어 요놈들이 성질이 급했다. 잡히면 가만히 순응을 않고 벌떡 벌떡 뛰고 발버둥을 치다 숨을 거둬야 풀이 꺾인다. 아주머니들은 전어가 잡히자마자 광주리에 댓잎을 깔고 전어를 담는다.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진 외갓집까지는 25리쯤 되리라. 머리에 전어가 든 광주리를 이고 쌀이 있을만한 집을 찾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다시피 오신다.

"전어야 죽지말고 살아 있어라" 아주머니들은 자식 중학 입시 합격을 빌듯 전어에게 살아있으라고 빈다. 전어가 팔딱 팔딱 뛰지 않으면 원래는 보리도 못 받는다.

외할아버지는 해남이나 성전 등에서 시집와 강진에서 고생만 하고 사시는 아낙들의 병을 많이 고쳐주셨다.

훗날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장충약국을 하시며 여인들의 하혈을 잡아 돈을 많이 벌던 내 외숙은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그 잘되던 약국을 걷어 치우고 아이들 교육시킨다고 일찍 미국으로 이민간 외숙의 아들들, 그러니까 나의 외사촌 동생들은 두 놈 다 하버드 의대를 갔다. 자궁암과 유방암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딜려와 파닥거리는 전어를 사주기 위해, 두주에 있는 쌀을 손수 잔뜩 퍼오시고는 아낙들의 건강 안부를 일일이 묻고 진맥도 하시는 것이었다.

임신을 들킨 분들도 계셨다.

"고것이 장을 한바가지나 먹어도 안 떨어져라. 아재 인자 나이가 쉰이 다 되가는디 동네 부끄러워서 못 살겄서라. 어추구 가만히 떨어진 법이 없으까라?"

"다 지 복이여, 다 지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께 잘 묵고 떡두꺼비 같은 놈 낳아. 아들이구만"

아낙들은 쌀을 챙겨 떠나고 외할아버지와 나는 햇살 조각과 댓잎을 시녀로 왕과 세손처럼 아직도 뛰는 전어를 먹었다.

고추장 된장과 마늘만 있어도 전어에서는 단내가 났다.

"전어 요놈들이 조금만 귀해도 참 중한 대접을 받을 텐데. 전어는 떼로 몰려다니고 지 성질을 못 이기고 파닥거리다 죽어버려 제 대접을 못 받는다. 참 맛은 있다. 생으로도 구워도 무시에 무쳐도 맛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맛이 깊어지고 젓갈을 담으면 고춧잎과 궁합을 이루어 밥맛을 돋운단다."

어른이 되었으나 지금도 어린이다. 새 가을을 맞을 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음을 잘 안다.

"나는 진실로 한순간 한순간을 섬광처럼 살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나만의 모습으로 나만의 향기로 눈부시게 질주하고 싶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외로우나, 의로운 질주가 될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나의 기를 너무 많이 키워주셨다. 단 한번도 내가 못 할 일이 있다고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가장 맛있었던 가을 햇살 전어를 먹여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도 나의 투쟁은 그 맛있었던 전어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맛보게 하겠다는 끝없는 욕심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