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원조인지 모르고 컨닝한 놈이 큰소리치고 대장 노릇
[신광조의 풍류남아] 김치와 라면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김치라면' 등의 단어는 내가 창조했다
라면의 원리, 고체화를 시켰다가 물로 열을 가하면 다시 부드럽게 풀어지는 발명은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컨닝에 능한 일본이 이를 식품에 적용, 라면을 개발했다. 우주인의 비행식품이다.
다시 한국이 이를 컨닝했다. '풍년라면'이라는 곳에서 재개발했으나, 자금력 유통력이 모자라 삼양 농심 등에 뺏겼다.
한국이 라면으로 꽃을 피운 것은 매운 맛을 가미해, 다깡(단무지)에만 의존하는 일본라면의 심심함을 부순 것이었다.
라면은 무슨 반찬과도 어울리나 생김치와 잘 맞는다. 익은 김치는 라면을 끓일때 재료로는 좋으나 다 끓인 뒤 반찬으로는 잘 궁합이 안 맞는다. 바로 막 담은 열무총각 김치나 겉저리 생김치가 좋다.
나는 공무원 시절 한국 라면 발전에도 꽤 기여를 했다. 김치와 라면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김치라면' 등의 단어는 내가 창조했다.
나의 대화를 유심히 들은 농심라면 식품 개발팀이 30년전 본격 K프로젝트로 착근시킨 것이다. 식품 개발에 가장 어려운 점은 특허가 어려워, 첫 개발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점이다.
한참 지나다보면 누가 원조인지 창조했는지도 모르게 되고 컨닝한 놈이 큰 소리치고 대장 노릇을 한다. 나는 '된장라면'도 개발해보았으나 이는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라면을 윈윈으로 띄우는 것은 역시 매운 맛이다.
기존의 라면 강자들의 틈새를 뚫기 위한 팔도라면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내가 광주시 과장 시절, 팔도라면에서 나를 스카웃하려 했다. 연봉 5천 정도를 받고 있었는데 1억원과 차량을 제시했다.연봉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 광주를 위해 할일이 있을 것 같이 주저주저하다가 거절했다. 지금은 많이 후회가 된다.
그때 생각했던 단어 '비비고'는 다른 청춘의 젊은 여인이 가져갔다. 팔도라면이 비빔면으로 히트를 친 계기다. 그때 내가 식품업계에 투신했더라면, 나는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최일선에서 치고 나간 한류 전파의 맹렬한 전사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