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피안의 세계로
한계 상황에 놓인 허약한 존재의 본질과 모순을 드러낸 것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0일 타계했다. 향년 93세.
작가 밀란 쿤데라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그의 대표작은 알 거다. 국내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책 내용은 제대로 이해 못 해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입에 올리고 다녔다.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이들이 봤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968년 체코 민주·자유화 운동과 소련 침공으로 이어진 '프라하의 봄'. 암울한 시기, 삶과 사랑을 다룬 역작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4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됐다.
소설은 무거운 시대적 상황과 각각의 상처를 짊어진 네 남녀의 각기 다른 방식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여기에 투영시켰다. 진지함-가벼움, 책임-자유, 영원-찰나 등 존재의 모순을 짚는다. 한계 상황에 놓인 허약한 존재의 본질과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니체는 알프스의 호젓한 호수가를 산책할 때마다 홀로 선 거석을 바라보면서 '영원회귀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 사상과 짝을 이룬 시간 파괴적 서술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로 평가된다. 국내에는 1988년 처음 번역돼 입소문을 탔다.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전재된 후 그해 11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첫 출간 당시 독문학자 송동준이 독일어 판본을 옮겨 펴냈다. 11년 뒤 1999년 불문학자 이재룡이 옮겨 번역본이 다시 나온다. 불어판 출간은 불어 판본 번역이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이라는 작가 요청에 따랐다. 쿤데라는 모국어인 체코어로 글을 썼다.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 이후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뒤 1993년부터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국내에서 10년 전, 민음사가 쿤데라의 소설과 에세이, 희곡을 망라한 ‘밀란 쿤데라 전집’(전15권)을 완간한 바 있다.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소설 10종, 에세이 4종과 희곡 1종이다. 프랑스 바깥에서 쿤데라 전집이 처음 나온 거다.
하늘의 별로 오른 쿤데라, 우리에게 남겨준 그 존재의 무거움이여!
우리가 사랑했던 작가, 우리의 젊은 날에 많이 빚을 졌던 작가, 영면에 든 그에게 안식과 평화가 깃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