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바그너그룹의 ‘1일 무장 반란’...‘푸틴 구하기’ 각본?
러 군부에 대한 진짜 불만, 혹은 '푸틴 구하기' 관측까지 상반된 설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용병(傭兵)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 코앞에서 ‘무장 반란’을 중단했다. 모스크바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 중 하루만에 꼬리를 내렸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협상을 거쳐 철수로 선회했다. 푸틴의 양해를 얻은 벨라루스 루카센코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만나 협상했다.
"양측은 유혈 사태는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루카센코)
"유혈 사태 시 책임을 느껴 기지로 간다."(프리고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의 형사입건을 취소했고,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용병들도 용감히 싸운 점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뭔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뭔가 좀 이상하다.
하지만 외양상 철권통치자 푸틴은 리더십에 치명타를 받은 것으로 비친다. 일각에서는 흔들리는 푸틴에 대한 친위쿠데타설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세계는 러시아 보스의 통제력 상실을 목격했다”며 “푸틴은 몹시 두려워하며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기회로 “F-16과 ATACMS 미사일 요청은 유럽방어를 위한 것”이라며 무기 제공을 호소했다.
앞서, 바그너 용병은 “러시아군이 자신의 후방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했고 2천명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란에 돌입했다. 푸틴은 이를 “반역”으로 규정, 프리고진 체포령을 내리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프리고진은 투항을 거부,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하루에 1000㎞를 돌파하며 모스크바에 접근했다. 한때 모스크바 붉은 광장과 박물관은 폐쇄됐다. 외곽엔 장갑차와 병력 주둔한 검문소도 설치됐다. 모스크바 인근 도로들의 봉쇄 장면도 목격됐다.
바그너 그룹은 프리고진과 군출신 우트킨이 만들었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로 군 사상자를 줄이거나 국제 여론에 부담되는 지역에 투입했다. 크림반도 및 돈바스를 비롯해 시리아, 모잠비크,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바그너 그룹은 급성장했다. 영국 국방부는 바그너그룹이 5만명을 지휘하고 있으며 전투의 핵심 전력이라고 했다. 모병(募兵)이 힘들자 죄수를 대거 전투요원으로 썼다. 용병 5만명 중 80% 4만명이 수감자라고 한다. 현재 전력은 2만5000명 정도로 알려졌다. 바그너그룹 본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바그너 그룹은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금광 사업에도 관여한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푸틴 요리사'로 불린 최측근이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이 즐겨 찾는 식당을 운영했다. 푸틴 만찬과 크렘린궁 연회까지 도맡아 ‘요리사’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데 왜, 무장반란을 시도했나?
러 군부에 대한 진짜 불만, 혹은 '푸틴 구하기' 관측까지 상반된 설이 나온다. 푸틴을 전쟁의 늪에서 건져내려 ‘짜고 친 고스톱’일까? 국방장관이나 군 수뇌부에 책임을 돌리려고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감행했다고? 그렇게 보기엔 너무도 실전 같은 상황이었다. 바그너의 1일 반란은 일단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