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전설' 선동열, 5.18 계엄군에게 두들겨맞을뻔한 이야기

별명 ‘혹성탈출’. 방수원 선수는 독특한 외모에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23-06-22     신광조 객원논설위원

1980. 5.18, 그날 광주일고 야구부는 부산에서 열린 고교야구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당시 광주일고 야구부엔 불세출의 영웅 선동열이 있었다.

승리를 자축하며 돌아오던 광주일고 야구부는 광주에서 큰 난리가 나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학교로 들어갈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일고 야구부 조창수 감독은 하는 수 없이 송정리에서 여관을 하시던 선동열의 부친 선판규씨에게 부탁을 드려야만 했다.

'청룡기가 눈 앞인데 애들 합숙 좀 부탁드립니다.'

조창수 감독의 다급한 요청에 선판규씨는 쾌히 승낙했다. 학교에 가끔 들를 때에도 야구부 선수 전원에게 보양식을 크게 쏘던 그였다.

광주일고 야구부는 선판규씨 덕에 여관에 머물며 송정 동초등학교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시무시한 일이 터지게 된다.

당시 송정리는 광주와는 철저히 분리된 지역으로 계엄군들이 투입되어 속속들이 들어오는 송정리역이 있었다.

그날도 계엄군들을 태운 군용트럭이 지나가는데 한 청년이 주먹을 날리며 욕을 했나 보다. 그러자 계엄군들이 트럭을 세우고 그 청년을 잡으러 뛰어내렸다. 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엔 대검이 착검된 상태였다.

청년은 당시 훈련 중이던 광주일고 야구부 사이를 헤치며 달아났고, 이에 놀란 광주일고 선수들은 달려드는 계엄군들에게 쫓겨 일단 여관으로 냅다 뛰었다. 기어이 여관까지 계엄군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광주일고 야구부는 선동열의 2년 선배이자 영남대 소속 방수원 투수가 코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너 이 XX, 니가 아까 욕한 놈이지?”

방수원의 배에 계엄군이 대검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방수원은 고등학교 후배들을 보호할 양으로 앞에 섰지만 그 전에 많은 시민들이 죽도록 맞으면서 끌려가던 것을 봤던 터라 이렇게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선판규씨가 나섰다.

"야구만 하는 애들이라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절대 욕했을 리가 없습니다. 내가 애들 신원보증을 다 서겠습니다"라고 무릎 꿇고 호소했다.

생사가 갈려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때 마침 천우신조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계엄군 중 장교 한 명이 고교야구 매니아였던 것이다. 당시 초고교급 스타 선동열을 알아본 그 장교는 선판규씨 호소에 따라 부하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방수원의 책임감, 선판규씨의 호소 덕에 국보급 투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방수원은 선동열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쳐줬다. 선동열의 중지를 이용한 슬라이더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구종으로 유명하다. 150km대의 강속구와 140km대의 슬라이더 단 투피치만으로 세계 야구 대회와 국내 프로야구 판을 호령했다.

선동열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는 결국 방수원 덕에 생긴 것이니 선동열에게 방수원은 인생의 큰 은인인 셈이다.

별명 혹성탈출’. 방수원 선수는 독특한 외모에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향 창단팀에 선수가 없자 기꺼이 영남대를 중퇴하고, 해태 타이거스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해태 타이거스의 프로야구 첫게임 선발투수가 바로 그였다. 볼이 빠르진 않았지만 갖가지 변화구로 타자들을 농락했으며 팀에서 부르면 언제든 마운드에 섰다.

어린이날에 그가 마운드에 선 것도 선발투수 땜방때문이었다.

신들린 듯한 변화구로 상대타자들은 헛스윙을 해댔고 수비수 차영화의 기가 막힌 수비 도움 덕에 그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게 된다.

하늘도 이 사실을 알았을까? 당시 다른 구장 경기를 중계하기로 했던 방송사는 그 경기가 우천으로 연기돼 급히 광주경기로 일정을 바꿨다.

방수원에겐 또 재미있는 이력이 있다. 원래 방수원이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생이 있었는데 수년간 그를 찾지 못하자 부친이 동생을 사망신고로 처리해 버렸다. 그 와중에 호적상 이름이 잘못 표기돼 잃어버린 동생 이름이었던 방수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30여년이나 그 이름을 쓰며 프로야구 투수로 활약하던 그때, 거짓말처럼 잠실야구장으로 잃어버린 동생이 찾아오게 된다. 사망신고까지 마친 동생과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방수원이란 이름은 형이 그대로 쓰고 원래 방수원이었던 동생은 다른 이름으로 개명해서 쓴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