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교수의 눈에는?...'킬러 문항' 논란 참 사치스럽다

어차피 입시경쟁으로 인재 선별이 종료되기 때문에 사교육을 맡고있는 '명문학원'만 할 일이 많아져

2023-06-21     이양승 객원논설위원
YTN 화면 캡처

돈 잘 버는 '일타강사'가 화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잘 버는 건 자랑이다. 그리고 세금 잘 내고 법을 준수했다면 '일타강사'가 번 돈은 '일타강사'의 것이 맞다.

하지만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일타강사가 돈을 잘 벌어 어디에 써든 자유이지만 나라 경제를 위해선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닌 건 분명하다.

'입시'는 전형적인 신호보내기 게임이다. 한국 수능시험은 모든 수험생들을 일렬종대로 줄을 세울 수 있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그 등수에 따라 대학과 학과가 정해진다.

솔직히 말하자. 한국은 누가 뭐래도 '학벌'의 나라다. 한번 '학벌'은 영원한 '학벌'이다. 왜 그렇게 '학벌'에 열광할까? '학벌'로 엮이는 '학맥'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네트워크는 '학맥'이다.

자신이 고용자라고 생각해보자. 직원을 어떻게 뽑을까? 직원들은 자신의 능력 수준을 솔직히 자백할 유인이 없다. , 능력이 없어도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게을러도 부지런하다고 말할 거짓말할 유인은 존재한다. ‘정보비대칭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직원을 어떻게 뽑을까? 쉽다. 그 구직자의 학벌을 보면 안다. 학벌은 대개 수능시험 등수와 일관된다. ‘물수능' '불수능'이 문제가 아니고, 대학입시 결과가 노동시장의 유일한 지표이기 때문에 입시경쟁이 격화되는 것이다. 그 수능점수에 기초한 선별방법이 실제 직무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아내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고용자들은 '학벌'을 통해 인재를 '선별'하는 것이 위험이 가장 덜하다는 걸 안다. 기업들은 인재채용을 하려 할 때, 구직자들의 학교 간판을 중요한 선별도구로 할 수밖에 없다. 구직자들 입장에선 학교 간판에 따라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것이 불합리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시장경쟁을 해야 하고 정보비대칭이 워낙 심각한 상태에서 인재를 선별해내는 데 한계가 있다. 학교 간판을 활용하여 구직자의 능력을 추측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기업들처럼 하지 않으면 선관위처럼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를 묻고 채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흙수저들은 더욱 입시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회적 딜레마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경기자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모든 경기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타난 상황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내쉬균형이다. 내쉬균형이란 상대의 전략을 예상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해 이루는 균형 상태를 말한다. 에선 어느 한 경기자도 홀로 이탈할 유인이 없다. 그 딜레마 상황을 어느 한 사람이 나서서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가 교장이 되어도, 교육장이 되어도, 교육감이 되어도, 교육부총리가되어도, 총리가 되어도, 심지어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 딜레마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경기자의 행동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가 아니다. '물수능' '불수능' 논란도 아니다. 대학교육 정상화가 문제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큰 간판' 대학을 나오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작은 간판' 대학을 나오면 노력을 해도 편견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간판' 대학 교수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취업을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할일이 없고, '작은 간판' 대학 교수들은 '노력을 열심히 하더라도' 학생들이 취업을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진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보면 그런 나라에선 대학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내실있는 대학교육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된다. 초중고 공교육도 별로 필요가 없어진다. 어차피 입시경쟁으로 인재 선별이 종료되기 때문에 사교육을 맡고있는 '명문학원'만 할 일이 많아진다. 명문학원에서 '킬러 문항'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것이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도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이토록 비대해진 것은 교육열이 아니고 비정상적 입시열때문이다. 그 비정상적 입시열은 비정상적 대학사회를 반영한다. 사회가 대학과 교수집단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한국 교수집단을 신뢰하는가? 교수 추천서만 받고 직원을 채용할 용기가 나는가?

물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당신들이 교수 추천서만 받고 직원을 채용한다는 것을 알면 교수들은 제 자식들, 친인척들, 돈 가져다 주는 학생들을 위해 매끄러운 말로 추천서를 써줄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사회에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신뢰와 추천서는 언감생심일 것이다. 교수집단을 못 믿는데 대학은 믿겠는가? 부정한 교수들이 신뢰없는 대학을 만든다.

그렇기에 노동시장이 실패하고 그럴수록 학벌과 학맥 또는 줄빽을 통해 사람을 뽑아 쓸 수밖에 없다. 믿는 건 '대학간판' 뿐이다. 그래서 모두가 '대학간판'을 위해 입시경쟁과 사교육에 올인한다. 그 결과 한국의 신호비용이 막대해지는 것이다. 무려 20조가 넘는다. 그 신호비용은 '일타강사'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좌파 운동권 출신이 재벌이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금수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입시경쟁 승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자녀들의 사교육에 몰입하고, 흙수저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이 입시경쟁 실패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자녀들의 사교육에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딜레마이다.

일부 좌파 운동권 출신은 사회적 딜레마 상황을 이용해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등수경쟁을 조장하고 자신들은 재벌이 되고 있다.

방법은 딱 하나다. 사치스러운 '킬러 문항'을 없애고 교육부가 나서서 대학들 간에 존재하는 정보비대칭을 해소해주는 것이다. 모니터링과 스크리닝이 필요하다. 정보공개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학 부패와 비리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꿈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대학에선 부패와 비리가 일어나선 안된다. 또 말하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온갖 부패와 비리의 복마전이 대학이다. 공돈 빼먹으려 눈이 벌개진 교수들도 너무 많다. 당신들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학 부패와 비리가 줄빽을 이용해 구렁이 담넘듯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항상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학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서 어느 누구도 한국의 대학과 교수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정부는 대학의 신뢰 회복을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