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세 사기꾼에게 '건축왕’ '빌라신' 칭호 부여하나
[홍승표의 늘공 40년] 사기꾼이 가진 게 많다고 해서 왕이나 신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른다는 건...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가장 중요한 게 내 집을 갖는 일이다. 그런데 이른바 금수저가 아니면 집을 마련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아들이 결혼할 때, 집을 사주고 싶었지만 사정이 녹록치 않아 전셋집을 마련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월세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안을 삼았다.
전세로 사는 사람들의 희망은 당연히 내 집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세가 사기를 당한 것이라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2천700채를 보유한 ‘건축왕' 남 모씨와 공인중개사 등 일당이 세입자들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것이 비극의 단초가 됐다.
해당 전세사기 피의자 ’건축왕‘ B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함께 지난해 1∼7월 미추홀 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 보증금 125억 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들이 세입자들로부터 가로챈 전세 보증금은 380억 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입자들이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보증금은 700억 원대를 넘어섰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 ‘빌라의 신’이라고 불린 일당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무자본 갭 투자’ 방식으로 전국에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을 3400여 채 소유한 상태로, 임대차 계약 종료됐는데도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했다. 경찰은 세입자들을 상대로 피해접수를 받고 있다.
내가 사는 동탄 신도시에서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피해 규모가 300건에 이른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사회초년생과 젊은 직장인인데 문제는 거래가격이 전세보증금 이하로 떨어져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넘겨받는다고 해도 최소 수백에서 수천만의 손해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는 전세사기범을 두고 ‘건축왕’이라는 칭호가 널리 퍼지자 관련단체가 항의하고 나섰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인천 사건 보도를 시작으로 전세사기 범죄를 일으킨 인물을 두고 ‘건축왕’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단어가 가진 본래 뜻은 퇴색되고 부정적 의미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건축 왕이라는 문구 대신 ‘전세사기 범죄단, 임대사기 범죄단’ 등의 표현으로 대체된다면 건축이라는 단어사용에 대한 우려불식과 더불어 해당사건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기에 적합할 것이다.”
‘건축왕’이든 ‘빌라의 신’이든 그 의미나 어휘가 그리 좋게 느껴지진 않는다. 왕은 백성들이 편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일하는 자리이고 신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다. 한마디로 사기꾼이 가진 게 많다고 해서 왕이나 신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대한건축사협회의 주장대로 ‘전세사기나 임대사기 범죄 왕’이라는 별칭이 어울릴 것이다. 사기꾼 때문에 피눈물 흘리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는데 이들이 왕이나 신으로 불리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려는 작위적인 어휘(語彙)가 난무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또 하나, 일부에서 이번 사기범죄피해를 국가에서 보상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사기 피해를 당한 건 안타깝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진 계약인데 사기를 당했다고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건,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예전에 전세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나 보이스피싱, 주가조작 피해자들도 보상해 줘야 하나? 아마도 나라 곳간이 거덜 날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부동산 계약으로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국가가 수익금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유 불문, 사기 피해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